![]() |
헨리 퓨젤리, ‘맥베스, 뱅쿼, 그리고 마녀’, 1793년~1794년,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컬렉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그림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Macbeth'의 1막 3장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장군인 맥베스와 뱅쿼는 전쟁터의 차가운 바다 안갯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섬뜩한 마녀와 마주친다. 이들은 '세 마녀' 혹은 '이상한 자매'라고도 알려진 '맥베스'의 유명한 등장인물이다. 이 주술사 노파들은 맥베스가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며, 뱅쿼의 후손들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권력욕이 강한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으로부터 점괘를 전해 듣고 왕을 살해하라고 부추긴다. 결국 맥베스는 던컨 왕을 시해하고 왕좌를 탈취하며 동료 뱅쿼마저 살해한다. 탐욕에 눈먼 맥베스 부부에게는 왕관만이 아른거릴 뿐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하지 못한다. 손에 피를 묻힌 후부터 맥베스는 결코 '평화롭게 잠들지 못한다.'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제자리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나 깊숙이 흥건한 피 웅덩이 속에 온몸을 담그고 있었다.
점점 더 무자비한 살인과 폭정으로 치닫는 맥베스는 어느 날, 레이디 맥베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마도 죄책감과 광기에 휩싸인 채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측된다. 맥베스 역시 던컨 왕의 아들 맬컴과 맥더프 장군의 반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맥베스 부부의 여정은 통제되지 않은 어두운 욕망과 도덕적 타락이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헨리 퓨젤리(Henry Fuseli, 1741년~1825)는 영국에서 활동한 스위스의 화가로, 마치 악몽과 같은 초자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주제에 탐닉했다. 그는 위 작품을 비롯한 여러 버전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 트리오가 맥베스의 운명을 예언하는 모습을 그렸다. 다음 그림 역시 '맥베스'의 세 마녀를 묘사한 것으로, 그 이미지가 헨리 퓨젤리 특유의 기괴하고 섬찟한 느낌을 준다. 세 마녀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훌륭한 장군 맥베스에게 왕위를 향한 욕망을 일으켜 반역자이자 폭군으로 만든다. 이들 마녀는 악과 파괴의 대리인이며,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
헨리 퓨젤리, ‘세 마녀 또는 이상한 자매’, 1783년,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스위스 취리히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맥베스는 점점 더 편집증적인 폭력에 함몰되는 한편 초자연적인 것에 필사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대신, 마녀들을 찾아가 예언을 구하고 그들의 말을 맹신한 채 다음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무속은 그를 몰락으로 이끄는 촉매제였을 뿐이다. 갈수록 예언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을 파멸시키는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주술과 예언의 힘을 믿을까?
영국의 생물학자 루이스 월퍼트(Lewis Wolpert)는 다른 종에 비해 월등히 이성적인 인간이 천사와 악마, 유령, 점괘와 예언, 주술과 미신처럼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들을 믿는 이유는 인간의 머릿속에 '믿음 엔진(belief engine)'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먼 옛날 인류는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 닥쳐 생존을 위협할 때, 나름대로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불확실성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종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믿음의 체계는 인간이 이야기를 꾸며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믿음 체계가 월퍼트의 말대로 단순히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해도 인류에게 이익이 된다. 예를 들면, 종교는 심리적 안정감과 낙관적 인생관을 갖게 하므로,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무신론자보다 만족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믿음 엔진'은 순기능뿐 아니라 그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결여된 그릇된 믿음인 경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맥베스 부부처럼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는 점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보다 적지 않다. 첨단 기술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울이나 그릇이 깨지면 꺼림칙하게 여기고, 징크스에 집착하며, 부적 같은 것을 지니고 다닌다. 처칠과 루스벨트 같은 대단한 사람들도 13일의 금요일에는 약속을 취소하곤 했다고 한다.
탄핵 절차 중인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둘러싼 무속 관련 소문이 무성하다. 보수 성향 매체조차 '무속과 점술이 권력 주변뿐 아니라 심장부까지 활개 친 나라'라고 논평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법체계, 합리적 시스템과 제도 대신 국가 운영을 점술과 미신에 의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의 위험성과 악한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비극이다.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맥베스는 뜬금없는 무녀의 예언을 믿고 왕권을 탐한다. 권좌를 차지하고픈 욕망과 사악한 범죄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을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몰락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관객에게 사필귀정, 혹은 도덕적 질서의 회복이라는 만족스러운 결말을 선사한다. 우리가 사는 실제 현실은 천벌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부조리한 세상일지라도, 최소한 문학에서만큼은 '천벌은 있다'라는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위로와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만세!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