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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격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훼손한 법원 현판이 땅에 떨어져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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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홍다선 판사와 형사9단독 강영기 판사는 21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서부지법 난동자 58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고 그중 56명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나머지 2명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을 면했다. 앞서 서울서부지법 신한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서부지법 인근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5명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열고 이중 2명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서부지법은 2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피의자 중 영장전담판사실 침입자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영장전담판사가 아닌 일반 법관에 영장심사를 맡겼다.
22일 구속된 56명을 혐의별로 살펴보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 39명, 특수공무집행방해 12명, 공용건물손상 1명, 공용건물손상미수 1명, 특수폭행 1명, 건조물침입 1명, 공무집행방해 1명으로 나뉜다. 20일 구속된 2명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다.
◇”헌법질서 근간 훼손, 용인 가능한 선 넘어”
전국 판사들의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22일 이번 사태에 대해 “사법부의 기능을 침해하고 헌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로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했다. 법관대표회의는 “서부지법에 대한 공격은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은 심각한 사안이고 이로 인해 법관을 포함한 사법부 구성원이 입은 상처가 크다”며 “전국 법관들은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하는 동시에 재판 독립을 수호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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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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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는 이날 “헌법재판소·법원 등 주요 국가기관에 경찰기동대를 24시간 상시 배치해 경비를 강화하겠다”며 “헌법재판관과 주요사건 법관에 대해선 경호 수준의 신변보호를 통해 법치주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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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모습. /조선DB |
50명이 넘는 무더기 구속은 2016년 구로경찰서에서 중국 기반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해 54명을 구속한 이후 9년만의 일이다. 폭력 사태로 좁혀 보면 64명이 구속된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16년만이다. 법조계와 경찰에선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단순한 대규모 폭력 사태를 넘어 민주주의의 삼권(三權) 중 하나이자 법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에 대한 침탈 시도였다는 점에서 무더기 구속은 불가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에서는 이번 사태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엄정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청은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벌어진 19일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 주재로 전국 지휘부 긴급회의를 열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련의 불법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며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일선서 과장도 “이번 사태는 경찰관에 항의하다 감정에 휩쓸려 폭력을 행사하는 일반적 공무집행방해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법원과 판결을 대상으로 하는 폭동은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공권력에 대한 전례 드문 공격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법원 판결에 대한 시위나, 판사 개인에 대한 테러는 있었지만 군중(群衆)이 우르르 법원에 침입하는 건 처음 본다”며 “앞으로도 공정한 판결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판결하는 입장에서 위협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폭동으로 국가 시설이 파괴된 건 거의 전례 없는 일”이라며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닌 것은 극도로 심각한 범죄”라고 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헌법 기관을 폭력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비문명적일 뿐 아니라 법치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의지도 이번 무더기 영장 발부의 고려사항 중 하나로 해석된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기관 폭동이 일상화된다면 사법 체계가 붕괴된다”며 “삼권 중 하나인 법원을 붕괴시키려 한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망가뜨리고 무정부상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했다. 또 “과거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올 때 법관 개인에 해를 가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사안이 훨씬 무겁다”고 했다.
◇21세기 최다 구속 사건은 2009년 쌍용차 사태
역대 난동자들이 무더기 구속된 폭력 사태를 살펴보면 대다수가 노조 등 시위 과정에서 발생했다. 국가 기관을 공격한 이번 사태와는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100명 이상이 구속된 사태는 1997년 6월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발생한 한총련 5기 출범식 사태로 당시 실업고를 졸업한 시민 이석(23)씨가 학생회관 부근에서 캠퍼스를 구경하던 중, 한총련으로부터 경찰의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받다 숨진 뒤 시위 가담자 1000여명이 연행되고 이 가운데 195명이 구속됐다.
2003년 11월엔 민주노총이 서울시청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면서 경찰을 향해 화염병 700여개를 투척하고 보도블럭을 깨 투척전까지 벌여 시위 주동자 53명이 구속됐다. 2006년 미군기지 이전 과정에서 발생한 평택 대추리 사건에서는 541명이 입건되고 134명이 기소됐으나 구속 인원은 20명에 그쳤다. 반면 2006년 7월엔 포항건설노조가 포항시 남구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고, 9일간 농성을 벌여 노조원 58명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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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화재 참사가 발생한 4층 규모 남일당 건물에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시위대가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되자 새총과 화염병을 들고 저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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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용산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숨진 용산 화재 참사 때는 8명이 구속돼 징역 4∼5년의 실형을 받았다. 같은해 4~5월엔 2600여명을 정리해고한 사측의 결정에 반발한 노조원들이 77일간 평택공장 점거 파업을 벌이며 폭력을 행사한 쌍용차 사태가 발생해 한상균 당시 쌍용차지부장 등 64명이 구속됐고 1700여명이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는 1997년 한총련 출범식 사태 이후 12년 만에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한 전 위원장은 그로부터 6년 뒤인 2015년 11월 서울 도심에서 민주노총 제1차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을 선동해 경찰관 90여명을 다치게 하고 경찰 버스 52대를 파손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이 당시 부상자 규모는 서부지법 난동 사태(51명)보다 훨씬 컸음에도 검찰은 한 전 위원장에게 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상과 집회시위법 위반 등의 혐의만 적용했고 다른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 7명에게도 소요죄 등은 적용하지 않고 구속 기소했고 이후 12명이 추가 구속 기소돼 20명이 구속됐다.
◇응축된 ‘사법 불신 심리’ 폭발... ‘사법부 책임론’도 제기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고 경찰 부상자 수가 과거 대형 시위 사태 때보다는 비교적 적은데도 서부지법 난동자들이 무더기로 구속된 데에는 결국 법원 습격이라는 특수성이 감안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던 이들은 법치주의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구속기소된 뒤 실형을 받았다.
2007년 10월 서울동부지법은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발사해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에 대해 “법치주의의 최후의 수호자인 사법부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현격히 증대됐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농민도 “재판의 일방 당사자가 자신의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이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사법부 구성원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재판제도와 법치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실형이 확정됐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치의 마지막 보루에서 정당하게 발부한 영장을 반대하며 심야에 대규모 폭력 사태를 벌인 것은 축구 경기 중 심판의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폭행한 것과 같은데 민주주의의 규칙 자체를 훼손하려 한 시도에 대해 엄단하지 않는다면 후진국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사태의 기저에 응축된 ‘사법 불신 심리’엔 그간 ‘사법의 정치화’ 논란을 자초한 사법부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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