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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8 (화)

불법이민자 단속에…‘미국 내 멕시코’ 시카고, 유령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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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도심은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이 이날 시작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꼽히는 시카고는 불법 이민자 단속의 핵심 타깃으로 거론돼 왔다.

특히 ‘미국 중부의 멕시코’로 불릴 만큼 멕시코 이민자 비율이 높은 시카고 시내 ‘리틀 빌리지’는 단속을 우려한 주민들이 외출을 꺼려 며칠째 거리가 텅 비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통행량이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 가게들도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앞서 2007년 시카고에서 대규모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홍역을 치렀던 공포가 되살아났다는 말도 나왔다. 20일 출범과 동시에 멕시코와 접한 남부 국경에 대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전방위로 밀어붙이고 있다.

● 학교, 교회 등 ‘민감 구역’에서도 단속 허용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경 차르’로 임명된 톰 호먼은 21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위한 단속을 개시했다며 “이 나라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중범죄로 체포됐거나 유죄 선고를 받아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되는 이들이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그는 “미리 준비한 체포 명단에 오른 중범죄자를 중심으로 집중 추적하고 있다”며 “이들을 찾는 과정에서 ICE 요원이 발견한 모든 불법 체류자가 체포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미 주요 대도시 위주로 설치된 26곳의 ICE 지부가 단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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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먼은 시카고 등 연방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여온 이른바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를 상대로 각을 세웠다. 그는 “피난처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체포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며 “시 당국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ICE 요원들이 가가호호 훑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불법 체류자를 눈감아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피난처 도시가 자초한 일”이라고도 했다.

대규모 단속을 위한 추가 조치도 21일 발표됐다. 국토안보부는 이날 ICE 요원이 교회, 학교와 같은 ‘단속을 금기시했던 구역’에서의 단속도 허용하는 지침을 내렸다. 앞서 2011년 교회와 학교 등에서의 체포를 금지한 ICE 방침을 철회한 것.

구체적인 단속 지역과 규모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시카고를 비롯해 뉴욕, 덴버,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내 대표적인 피난처 도시에선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J 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민주당)는 “연방정부가 우리와 소통하지 않아 정확한 단속 시점을 알 수 없지만, 시카고에서만 2000명 넘게 체포 명단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시민들의 안전을 당부했다. ABC방송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이민자 집을 방문해 단속에 대응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민단체 일리노이 이민자 난민권익연합은 “20일 하루에만 400건의 법률 상담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됐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남부 국경에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까지 2000명 규모의 ‘이민자 캐러밴’이 도보로 입국을 시도했다고 폭스뉴스가 전했다.

● 일부 민주당 주지사 “단속 협조”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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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기조와 이에 호응하는 여론이 커지면서 피난처 도시를 이끄는 민주당 소속 주지사나 시장들 사이에선 단속에 협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찰 출신으로 민주당 소속인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면서도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뉴욕에 머물 자격이 없다. ICE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고관세 부과와 결부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협력 의사를 밝힌 나라도 나왔다. 22일 블룸버그통신은 “인도가 우선 추방 대상에 오른 미국 내 인도인 불법 체류자 1만8000명의 추방 절차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향을 미국 정부에 밝혔다”며 “고관세 등 무역전쟁을 선제적으로 피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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