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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6 (일)

트럼프가 더 쌓으려는 '멕시코 장벽'과 한국에 튈 지 모를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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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후 행보는 예고했던대로였다. 20일(현지시간) 그는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가진 후 곧바로 지지자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그다음 기다렸다는 듯 조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를 철회하는 78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공무원 신규 고용 중단과 대면ㆍ사무실 근무 복귀, 연방 지출 삭감, 미국 내 출생 신생아의 시민권 부여(출생지주의) 폐지, 파리기후협약 탈퇴 등을 담은 행정명령들이 전격적으로 처리됐다.

# 이날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 중엔 남부 국경 비상사태 선포와 이민자 추방도 있었다. 취임식에선 석유 시추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와 무관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한국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이다. 視리즈 트럼프 행정명령 분석 2편에서 이 이야기를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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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했거나 앞으로 추진할 정책 중에는 우리나라와 무관한 것처럼 보여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석유ㆍ가스 시추 확대, 반독점 규제 완화, 멕시코 장벽 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 트럼프 공약➊ 석유ㆍ가스 시추 확대 =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한국에 고민만 안겨주는 건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긍정적 효과를 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화석연료로의 회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자급자족과 제조업 부흥을 위해 석유ㆍ가스 시추를 적극적으로 늘리겠다고 강조해왔다. 에너지 가격을 낮추겠다는 거다. 이 역시 '그린뉴딜' 정책 폐지의 일환이다.

미국의 석유 생산이 늘어나면 세계 시장의 석유 공급량이 증가해 국제유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고물가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내수경제에 희소식이 될 수 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전반적인 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정유업계에도 나름 긍정적이다. 단기적인 재고평가손실이 있을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원가 부담이 줄어들어 정제마진 상승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원가 절감으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 정유와 석유화학이 우리나라 수출의 큰 몫을 차지한다는 걸 감안하면 효과가 작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긍정적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화석연료로 회귀하려는 트럼프의 정책으로 국내 기업의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대응이 약해지고, 친환경 기조도 흔들릴 수 있다는 건 악재다. 특히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는 유럽의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 트럼프 공약➋ 반독점 규제 완화 =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10월 내놓은 '인공지능(AI) 산업 규제' 행정명령의 폐지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행정명령은 AI 개발과 활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AI로 생성한 자신의 가짜 사진을 SNS에 게재할 만큼 AI 옹호론자다.

그 연장선에서 빅테크 기업들을 위한 반독점 규제 완화 전망이 나온다. 미국 AI 산업을 선두에서 이끄는 게 빅테크 기업들인데, AI 규제를 풀어주면서 반독점 규제도 풀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미국의 주요 언론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지명한 연방거래위원회(FTC) 지도부가 빅테크 기업을 옥죄던 반독점 규제를 풀어줄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참고: FTC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린 리나 칸을 대신해 앤드루 퍼거슨 FTC 위원을 새 위원장에 앉혔다. 그는 플랫폼 규제나 빅테크 기업들의 반독점 규제를 강하게 반대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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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미국의 정책 변화가 국내 IT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AI 관련 규제나 플랫폼 규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플랫폼경쟁촉진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업체(네이버ㆍ카카오 등)뿐만 아니라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빅테크 기업의 반독점 규제를 풀어주려 한다면 '한미 간 정책'이 충돌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한 매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고했다.

"한국의 플랫폼 법안으로 미국 기업들만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면 미국과 한국의 통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국내 법안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방증이다.

■ 트럼프 공약➌ 멕시코 장벽 건설 =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멕시코 국경 폐쇄와 불법체류자 대규모 추방 작전, 멕시코 장벽 추가 설치도 놓쳐선 안 될 이슈다. 우리나라와 무관해 보이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다.

그중 장벽 설치 공약을 예로 들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설치 비용(당시 250억 달러 추산)을 멕시코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1기 집권 때에도 멕시코 국경에 장벽 설치를 지시하면서 그렇게 밝혔다. 하지만 당시 멕시코 정부는 장벽 설치 비용을 내지 않았고, 결국 미 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한 국경장벽 예산을 확 깎아버렸다.

예산이 모자랐던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예산 중 국내외 127개 군사시설 건설 사업 예산 36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4조3000억원)를 전용轉用해 장벽 건설에 썼는데, 그 불똥의 일부가 우리나라로 튀었다. 주한미군 예산 845억원을 국경 건설비로 가져다 쓰기로 하고는 우리나라에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고 했던 거다.

이 때문에 2019년 1조389억원였던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2021년에 1조1833억원으로 13.9% 늘어났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예산이 모자랄 경우, 우리나라에 여러 형태의 청구서를 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의 불법체류자는 1100만명(미국 이민협의회)으로 추산된다. 연간 100만명의 불법체류자를 추방하는 데 드는 비용은 880억 달러(약 128조원)에 이른다. 1100만명을 내보내려면 968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불법체류자를 내보내는 데에도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어떤 요구를 해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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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춰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은 숱하다. 미국 풍력시장 보조금 폐지로 인한 국내 풍력 업체들의 수출 감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개입과 재건 프로젝트 참여 확대, 오바마케어 폐지에 따른 서민층의 의약품 수요 감소와 국내 제약업체의 타격 등의 여파도 따져봐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는 점이다. 초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직무 정지 상태이고, 여야 정치권은 미래 권력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 오죽하면 재벌 총수가 트럼프 가족을 만났다는 게 화제를 일으킬 정도다.

이러다간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앞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략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말려들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기회가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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