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역군사법원은 21일 서울 용산구 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2억원, 추징금 1억6205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8월 A씨를 군형법상 일반이적(利敵), 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지난달 결심공판 땐 무기징역과 함께 벌금 8억원, 추징금 1억6205만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밝혔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정보사 공작팀장으로서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2급 군사기밀 등을 유출했으며, 청렴 의무가 있음에도 금전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출된 군사기밀에는 파견된 정보관들의 인적 정보 등이 포함됐고, 위 기밀이 유출됨으로써 정보관들의 생명·신체의 자유에도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정보관들이 정보 수집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더 활용할 수 없게 되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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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A씨는 ‘가족이 협박당해 기밀을 유출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며 “오히려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협박범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믿기 어렵다”고 했다. A씨는 기밀 유출 대가로 약 4억원을 요구했고, 차명 계좌를 통해 1억6205만원을 받은 것으로 수사 당국은 파악했다.
이날 A씨는 짧은 머리에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 패딩 점퍼를 착용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선고를 들은 뒤 법정에서 빠져나갔다. A씨 재판은 군사기밀 유출이 우려돼 비공개로 진행되다가 1심 선고만 공개됐다.
A씨는 1990년대부터 부사관으로 정보사에 근무했고, 전역한 뒤 2000년대 중반 군무원으로 정보사에 재취업했다. 군검찰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구축했던 공작망을 접촉하기 위해 지난 2017년 4월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동포(조선족)인 중국 정보기관 요원 B씨에게 억류·포섭된 후 그의 지시를 받아 군사기밀을 유출했다. A씨는 문서를 영외로 들고 나가거나 무음 카메라 앱으로 촬영해 기밀을 빼돌리고,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에 파일을 올리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했다고 한다.
군검찰은 A씨가 2022년 6월부터 2024년까지 파일로 된 문서 형태 12건, 구두 전달 18건 등 총 30건을 유출한 정황을 파악했다. A씨가 유출한 정보엔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해 온 블랙 요원들의 명단 일부와 정보사의 전반적인 임무 및 조직 편성, 정보 부대의 작전 방법과 계획, 특정 지역에 대한 정세 판단 등이 포함됐다. 이로 인해 우리 군 요원들이 일시 귀국하는 등 군 정보망에도 타격이 있었다. 군 검찰은 2017년부터 2022년 초까지의 기밀 유출 내용 및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받은 현금 규모는 파악이 안 돼 기소 내용에 포함하지 않았다.
A씨에 대한 초동 수사를 맡은 국군방첩사령부는 간첩죄를 적용해 군 검찰로 송치했으나, 군 검찰은 간첩죄는 제외했다. 현행 간첩법은 ‘적국’(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는데 북한과의 직접적 연계를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A씨의 유출 사건으로 간첩죄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의결됐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악용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계류 중이다.
군 소식통은 “일반이적죄로 징역 20년형이 나온 사례는 흔치 않다”며 “재판부가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18년 중국·일본 측에 정보사 요원 정보 등 기밀 100여 건을 넘긴 정보사 전직 공작팀장은 일반이적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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