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죽었다⑩]윤성로 전 4차산업혁명위원장
"민간 전문가 참여하는 정부 위원회, 상시 운영돼야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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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로 서울대교수(전 4차산업혁명위원장) 인터뷰. 2025.1.15./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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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강력한 동력은 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 레벨, 정부는 대통령 레벨 등 최고위자 급에서 아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력을 보여야 합니다. 칸막이 해소, 규제 철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깁니다. 민간이 참여하는 정부 위원회를 (정권이 바뀌더라도) 상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박세연 기자 =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직이 있다. 공공의 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풀기 위해 만든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그것이다.
산업계와 학계의 저명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일반적으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범한다. 공공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으니 민간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국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전문가로 꼽히는 윤성로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도 '미래 산업 육성'이라는 과제를 안고 지난 2020년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4차위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국가 AI 및 데이터 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지만 도출한 결과물이 강제성 없는 권고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있다.
AI 대응에서 완전히 뒤쳐졌고 혁신이 죽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그나마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나오는 혁신 역량을 죽이지 않고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규제를 해소하고 전통직역과의 갈등을 해소 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 동력'이 필요하다고 윤 교수는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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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로 전 위원장과 김부겸 전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28차 4차산업혁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2.3.28/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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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칸막이에 쉽지 않았던 정부 간 협력…권한 없어 한계
윤 교수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박사를 취득한 AI 전문가다. 당시 인텔에서 선임연구원을 거치고 해외 유수 기업의 러브콜이 이어졌지만 서울대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AI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진단하는 AI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습득한 지능의 가치가 '0'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는 혁명적인 동시에 인류에게 상당한 위협이 된다.
"의사는 지금 돈을 굉장히 많이 벌지요? 의료 지식의 가치가 그만큼 높은겁니다. AI 개발자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것도 아직은 지능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AI가 고도로 발달할 수록 그 지능의 가치는 0에 수렴합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AI가 될 수록 특정인이 특별한 능력으로 축적한 지식의 가치가 떨어지는 거죠."
AI가 인간의 능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당장 마주할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때 필요한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기술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윤 교수가 맡았던 4차위도 이와 같은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불과 6년 전에 설치됐었던 조직이지만, AI의 시간에서 6년은 '선사시대' 수준으로 긴 시간이다. 1~2년 전 기술만 들고 와도 '언제적 폐기물을 들고 왔냐'며 눈총을 받기 쉬운 게 AI 분야다.
비교적 정확한 시대의 흐름을 읽고 당시 1대 위원장으로 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자, 2대 위원장으로 AI 전문가 윤성로 교수를 영입하면서 법제도 개선과 사회적 합의라는 큰 숙제를 받았다.
하지만 4차위가 쏟은 노력에 비해 결과물은 아쉬웠다. 윤 전 위원장은 "조직의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며 "장관과 부처들이 위원으로 참여하지만 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공공 조직은 '부처 칸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업무 구분이 명확한데 4차위를 중심축으로 모든 부처가 서로 연계되는 정책을 마련하려니 쉽지 않았다.
"정부 출범 초기에는 범부처 조직의 협력에 힘이 실릴 수 있지만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돌면 이러한 동기 요인이 사라집니다. 정책을 밀어붙이려면 위에서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요. 각 부처는 자기만의 권한이 있으니까 벽을 허물기 쉽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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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로 4차산업혁명위원회 3기 위원장이 19일 서울 광화문 4차위 브리핑룸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4차위 제공) 2020.02.19 뉴스1 @ News1 ⓒ News1 강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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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상시화 필요…권한 있는 C레벨 역할 있어야
윤 전 위원장은 4차위와 같은 시도가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조직의 상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시 조직의 성격을 탈피하고 지속 가능한 조직이 만들어지면 권한 역시 뒤따라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기업에선 최고데이터책임자(CDO)나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 등이 톱다운 방식으로 칸막이를 조절하기도 한다"며 "정부도 마찬가지다. 4차위원장 때 CDO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조직이 항상 작동할 수 있는 영속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4차위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됐다. 윤석열 정부는 4차위의 기능을 계승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선보였으나 여전히 강제성 없는 자문기구 수준이다.
여기에 지난해 9월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까지 새로 출범했다. 정보 기술과 관련한 정책 역량이 한곳으로 모이기보다는 여기저기 산재한 모습이다. 이마저도 현재의 국가 리더십 공백에 따라 향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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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터닝 포인트 USA의 아메리카페스트 행사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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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출범·폐지 반복…컨트롤 타워에 힘 실어 줘야
전 세계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은 어떨까.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마련해 자국 AI 산업 육성의 초석을 닦았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계승해 트럼프 때보다 규제 측면을 강화했다.
이를 주도하는 정부 컨트롤 타워는 1976년 만들어져 미국 연방 정부의 과학기술혁신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로 알려져 있다.
OSTP는 2021년 '국가 AI 이니셔티브실'(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Initiative Office)을 만들어 AI 관련 중앙 허브 역할을 강화했다. 민간, 학계가 AI 정책 입안에 참여하고 연방 정부가 이에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과거부터 있던 조직을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정부 위원회'와는 차별화된다.
윤 전 위원장이 지속 가능한 조직을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직일지라도 정권에 따라 출범과 폐지를 반복하면 혁신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특히 민간 산업 전문가가 참여하는 많은 정부 위원회는 '규제 철폐'를 위해 만들어지는 만큼 속도감을 위해서라도 유지될 필요가 있다.
다만 윤 전 위원장은 조직의 형식 자체는 유연할 수 있다고 봤다. 꼭 정부 위원회가 아니더라도 대학이나 연구원 등 다른 곳에 힘을 실어주는 방법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신 조직이 계속해서 작동할 수 있도록 조직 자체의 내실을 다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위원회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대학이나 다른 기관이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비전을 잘 세우면 실력 있는 사람들이 올 겁니다. 제일 중요한 건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조직에 힘을 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기자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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