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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7 (월)

[한규섭 칼럼]‘尹 탄핵’과 ‘李 지지’는 별개라는 2030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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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진영논리에 합리적 결정 어려워

‘우리 편’이면 계엄도, 줄탄핵도 눈감아

脫진영 2030, 합리성 회복의 불씨 기대

동아일보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북한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한다면? 상식적으로 해당 공장의 가동 중단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 전체의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물량 수주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갑작스러운 생산 중단으로 납품 일정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빅테크 기업들이 감수해야 할 경제적 손실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을 것이 뻔하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도발적 상상은 황당한 ‘북풍몰이’ 정도로 치부했겠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북한이 러시아의 요청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고 미중, 미-러 패권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말이다. 솔직히 우크라이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미국은 주한미군이 직접 공격받지 않는 한 한반도의 웬만한 분쟁에는 개입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북한이 그런 카드를 고려조차 못 하게 할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자체 핵무장을 하든지, 아니면 만약 그런 도발을 감행한다면 ‘최고 존엄’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가능할까. 핵무기 개발을 공개적으로 한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도 미국의 감시와 방해 공작을 피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했고 핵무기 보유를 공식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극화된 한국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이 비밀리에 핵무장을 추진한다면 탄핵이나 임기 후 감옥행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 한 발의 미사일로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이 아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만 공격받았을 경우 우리의 대응 수위를 놓고 엄청난 남남 갈등이 일어날 것이 확실해 보인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법부, 행정부, 언론, 유권자까지 모두가 양극화돼 집합적 차원의 합리적 결정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결정은 객관성이 담보돼야 하지만 극단적 진영논리가 사회 모든 영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2025년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최근 여론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2030세대의 합리성이 돋보인다. 17일 발표된 1월 3주 차 한국갤럽 조사를 살펴보면 20대의 61%, 30대의 63%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이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인 40대와 50대의 67%와 70%에 근접한 수치였다. 마찬가지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가 해제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2주 차 조사에서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의 대통령 지지율은 3%와 6%로, 40대와 50대의 7%보다도 오히려 낮았다. 즉, 2030세대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반감은 4050세대 못지않았다. 반면 60대와 70대 이상은 각각 41%와 37%만이 탄핵에 찬성해 ‘비상계엄에도 불구하고 탄핵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동시에 2030세대는 이념적인 진영논리에 갇힌 4050세대나 6070세대와는 달랐다. 갤럽 조사에서 40대와 50대의 40%와 47%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장래 대통령감’으로 꼽은 반면에 20대와 30대에서는 이 비율이 각각 18%와 33%에 불과했다. 즉, 2030세대, 특히 20대는 “비상계엄은 잘못 되었고 윤 대통령은 탄핵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각종 사법 리스크의 중심에 있는 이 대표가 ‘장래 대통령감’으로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진영논리에서 가장 자유로운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실제로 이념적으로 ‘중도’ 응답자들은 68%가 탄핵에 찬성하면서도 28%만이 이 대표를 ‘장래 대통령감’으로 꼽아 2030세대와 비슷한 성향이었다. 참고로 60대와 70대 이상은 24%와 18%만이 이 대표를 ‘장래 대통령감’으로 꼽아 4050세대와 마찬가지로 진영논리에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라면 관료는 물론이고 검사와 판사 30명도 탄핵할 수 있다는 이념적 우월감에 빠져 있는 진영과 시대착오적 비상계엄 선포도 눈감고 넘어가고 싶어 하는 진영에는 합리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의 대통령 탄핵 과정은 화려한 경제 성장 뒤에 가려 있던 대한민국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일부는 현 상황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시그널’로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집합적 차원에서의 합리성 회복은 유권자가 주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실패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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