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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토)

[인터뷰]"삼무원(삼성+공무원)? 계속 혁신하려면" 아이팟 아버지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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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아이폰 개발 '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퍼델…
지난해 11월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국내 출간

한국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해온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불거지면서 삼성에 '삼무원'(삼성+공무원)이 넘쳐 혁신동력이 떨어진다는 걱정까지 나온다. 오늘날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을 만든 시발점인 '아이팟'을 개발한 전설의 엔지니어는 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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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퍼델 /사진=ARM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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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과 아이폰을 개발한 '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퍼델(Tony Fadell·56)과 지난 13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혁신'과 관련한 조언을 들었다. 그는 2001년 애플 입사 후 10개월 만에 아이팟을 내놓았고, 아이폰 개발에도 참여해 공동 제작자로 아이폰 3세대까지 만들었다. 퍼델은 30년간 업계에서 얻은 교훈과 통찰을 전하는 책 '빌드(Build) 창조의 과정'을 2022년 미국에서 출간했으며, 아마존 사용자들의 호평(리뷰 2700여개 평점 4.7) 속에 지난해 11월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퍼델과의 대화 내용이다.

-한국에서 '삼무원'(삼성전자+공무원)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의 혁신에 대해 염려한다. 삼성이 계속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혁신을 위해 삼성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삼성의 시작은, 반도체든 메모리든 디스플레이든 무엇이든 '기술 혁신'이었다. 그 기술을 가지고 최종 제품에 적용하는 등 삼성은 기술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을 시도한다. 나는 삼성이 혁신을 거듭해왔다고 생각한다. 삼성은 기술 혁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정말 잘한다.

하지만 '시장 혁신'(market innovation)에 대해서라면, 특히 삼성과 애플을 비교한다면 삼성은 시스템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구성하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 차원에서 혁신이 일어나면 삼성은 어려움을 겪는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삼성의 조직 구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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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첫 번째가 토니 퍼델, 3번째는 조니 아이브, 4번째가 스티브 잡스/사진=buildc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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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조직 구조는 시스템 차원의 혁신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한 부문 내의 특정한 기술 혁신을 위해 셋업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는 수많은 사업부서가 있으며 각자의 손익계산서가 있으며 모두 다른 보너스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삼성 사업부서들은 서로 협력할 필요가 없다. 반면 애플에서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제품 라인이나 기술 라인별로 손익계산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은 시스템 위주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 차원에서의 혁신이 불가능하다.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애플과 삼성의 차이점이다. 삼성이 기술에서 시장으로 갔다면, 애플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기술을 시스템화하고 있고 회사를 구축하며 팀이 함께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이 다르다.

-삼성이 변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을지 조언해줄 수 있나?

▶어떤 문화든 변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삼성은 그들의 모델이 잘 작동해서 많은 돈을 벌고 있고, 기복이 있긴 하지만 결국 생존하고 번영해서 삼성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애플은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내 생각에 한국인들과 주주(투자자)들은 애플을 부러워하며 애플 같은 기업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문화와 사업 구조를 애플처럼 바꾸지 않는다면 애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삼성이 만약 애플처럼 되고 싶고 제품 차원의 기술 위주 혁신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문화와 사업구조를 애플처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삼성은 중국 기업들과 경쟁할 만할 것이다. 시스템 차원(의 혁신)에서 중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 대만 기업 또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 같은 혁신적인 국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음… 한국은 혁신적이다. 단지 다른 나라와 다른 방식으로 혁신적일 뿐이다. 한국이 100년 전, 그러니까 80년 전만 해도 어떤 나라였는지 생각해보라. 따라서 한국인들이 매우 창의적이며 놀라운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단지 다른 방식으로 매우 창의적이다.

어느 문화에나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으며 한국도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한국 또는 일본, 대만을 성공시킨 것이나 경우에 따라 미국을 성공시킨 것은 대부분 기술 중심 혁신이다.

그런데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세상을 보라. (혁신은) 그 모든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즉 맥락의 단순화다. 또 혁신은 시스템 차원에서 발생한다. 국적, 문화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은 시스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며 시스템 차원에서 혁신해야 한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애플이 오늘의 애플 같은 회사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도 학교에 있든 어디에 있든 누구나 시스템이란 무엇인지 어떤 시스템이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기는지 계속 공부해야 한다.

-혁신에서 인공지능(AI)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인공지능이 어떤 한 가지에 능숙할지라도 시스템 차원에서 반드시 능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 프로그래머 수준의 개발자라면 코딩을 도와주는 AI 코파일럿과 함께 쉽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개발자는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아키텍트(architect·설계자)다. AI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이다. AI는 사람이 만든 것을 모방하고 반복한다.

따라서 만약 개발자라면 시스템 차원의 아키텍처(architecture·구조)에 능숙해져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시스템 차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여 창조하고 복잡성을 제거함으로써 더 크고 더 통합되고 더 간단하고 더 사용하기 쉬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토니 퍼델과의 인터뷰에서는 스티브 잡스도 빠질 수 없었다.

퍼델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 "팀원들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은 그걸 "합리적으로 불합리하다"(reasonably unreasonable)고 부른다고 답했다. 기자가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냐고 묻자 퍼델은 "잡스는 때때로 불합리하게 비합리적이었다"(unreasonably unreasonable)고 웃으며 말했다. 퍼델과 잡스의 관계를 상상케 하는 발언이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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