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품질 비슷·가격 저렴
명품 대체품으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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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한 ‘워킨백’(왼쪽)과 원조 에르메스 버킨백./쿠마고·본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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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워킨백’이 출시되자마자 완판됐다. 카무고라는 브랜드에서 내놓은 핸드백으로, 소비자들이 돈 주고도 사기 힘든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 ‘버킨백’을 빼닮았다고 해서 워킨백(Wirkin Bag)이라고 부른다. 월마트(Walmart)의 W와 버킨백(Birkin Bag)을 합친 별명. 가격은 78달러(약 11만원)로, 버킨백(7200달러·약 1053만원)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워킨백 인기의 배경에는 ‘듀프(Dupe) 소비 문화’가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한다.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트(duplicate)’를 줄인 말로 원래는 비싼 브랜드의 복제품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단순 복제를 넘어 품질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명품의 대체품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가짜 로고를 새겨 상표권을 침해하는 이른바 ‘짝퉁(위조품)’은 불법이지만, 디자인이나 주요 특징을 따라 하기만 한 듀프 제품은 법적으로 별문제가 없다.
◇“명품 살 돈 있어도 듀프 구매”
듀프 열풍은 세계적으로 타오를 조짐이다. 특히 Z세대(1997~2012년생)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했다. 소셜미디어(SNS) 틱톡에서 ‘dupe’를 검색하면 핸드백부터 향수·레깅스까지 각종 카피 제품 구매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하는 영상이 무수히 뜬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모닝컨설턴트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1%가 “듀프 제품을 의도적으로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서는 각각 44%와 49%로 그 비율이 훨씬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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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
MZ세대는 단지 돈이 없거나 돈을 아끼려고 듀프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미국 와이펄스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 응답자 중 60%가 “오리지널 제품을 살 여유가 있어도 듀프 제품을 선택한다”고 답했다. 또 “복제품을 찾아내는 건 재미난 일”(51%)이라고 응답했다. 모닝컨설턴트는 “쇼핑이 게임화됐다”고 분석했다. 품질과 디자인은 명품·오리지널 제품에 뒤지지 않으면서 훨씬 저렴한 ‘최고의 대체품 찾기’ 게임을 즐기는 셈이다. 마케팅 전문가인 노스웨스턴대학 재클린 밥 교수는 “듀프를 ‘명예 훈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일부러 구매한다”면서 “돈을 아끼려는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의도적 큐레이션”이라고 설명했다.
명품이 더 이상 부와 신분의 상징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패션 컨설턴트 이헌씨는 “과거 명품 브랜드는 부와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 기준으로 고등학생도 아르바이트 몇 달이면 명품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명품이 상징성을 잃게 된 것”이라고 했다.
◇‘질샌더 맛 유니클로’ ‘샤넬 맛 자라’
유명 브랜드의 복제품이라고 대놓고 알리며 인기를 끄는 브랜드도 생겨났다. 미국 화장품 기업 엘프뷰티(ELF)의 5달러짜리 ‘시어 슬릭’ 립스틱은 프랑스 클리니크(Clinique)의 20달러짜리 유명 립스틱 대체품으로 소문나면서 엄청나게 팔렸다. 향수 브랜드 도시어(Dossier)는 아예 상품 설명에 ‘(유명 향수 브랜드) 조말론에서 영감 받았음’이라 써놓고 가격까지 비교해 놨다. 국내에서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3000원짜리 ‘손앤박 아티스프레드 컬러밤’이 6만3000원짜리 ‘샤넬 립앤치크밤’ 못지않다고 소문나면서 입고 즉시 품절되고 있다.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들은 듀프 소비 문화의 대표적 수혜자들이다. 유니클로는 크리스토퍼 르메르, 질샌더, 마르니, 지방시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한정판 제품을 출시한다. 내놓을 때마다 매장 앞에 오픈런 줄이 늘어서고 온라인 사이트에선 바로 품절된다. 자라(ZARA)는 시즌마다 ‘샤넬 트위드 느낌’ ‘프라다 느낌 신발’ 등 듀프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젊은 층은 이러한 듀프 제품을 명품 브랜드 뒤에 ‘~맛’을 붙여 ‘질샌더 맛 유니클로’ ‘샤넬 맛 자라’ 등으로 부른다.
듀프 소비는 오리지널 브랜드에 타격을 주고 있다. 루이비통을 소유한 LVMH, 구찌를 만드는 케링 등 글로벌 명품 기업들의 매출은 감소 중인 반면, SPA 브랜드 매출은 성장세다. 디자인과 품질이 유사한 대체품이 시장에 늘어나면 원조 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복제품이 늘어난다고 원조 제품의 판매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복제품이 늘어날수록 오리지널 제품이 얼마나 훌륭한지 입증하는 증거로 작용해 오히려 이익이라는 주장도 있다.
듀프를 마케팅에 역이용하는 오리지널 브랜드도 등장했다. 명품 레깅스로 유명한 ‘룰루레몬’은 지난 202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듀프 스와프(Dupe Swap)’ 행사를 진행했다. 룰루레몬의 인기 레깅스를 듀프 제품과 무료로 교환(스와프)해 주는 행사. 참가자 1000명 중 절반은 룰루레몬 정품을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소비자였다. 룰루레몬 CEO 캘빈 맥도널드는 “새로운 소비자를 확보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이라고 자평했다.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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