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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국회 앞에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반올림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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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반도체 특별법의 ‘연구개발 노동자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제외’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던 더불어민주당이 ‘논의할 수 있다’고 태도를 바꿔 진보3당과 노동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10일 오전 노동당·녹색당·정의당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반올림 등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대착오적이고, 반노동적이며, 시민의 삶을 해치는 반도체 특별법을 단호하게 반대한다”며 “민주당이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면 그건 광장 시민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과 체포는 지난 44일간 전국의 무수한 시민들이 거리에서 싸워 얻어낸 결과”라며 “적절한 근로시간이 보장되어야 시민들이 서로 돌보고, 토론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는 한국을 다시 세계 최고 ‘과로 국가’로 되돌려 놓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며 “(반도체 산업의) 연구노동력이 필요하다면, 무능한 경영을 한 경영진의 임금을 삭감해서 인력을 추가 채용하라”고 주장했다.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에는 일정 소득 이상의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 노동자에게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를 비롯한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관련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과 유사하다. 이는 경영계가 주로 요구해왔는데, 삼성전자가 ‘티에스엠시(TSMC·대만의 반도체업체)는 주 70~80시간씩 일하므로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근로시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대면서 반도체 특별법 논의의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도체 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반대해왔다. 다른 나라와 달리 ‘적용 제외’의 구체적 내용이나 건강보호조처 등 근로조건의 핵심 내용이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어 정부 뜻대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선택적근로시간제, 재량근로제 등이 이미 마련돼 있어 이를 활용하면 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더욱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의 ‘경쟁력 약화’가 ‘근로시간 부족’이 근본 원인이 아닌데도 특별법을 통한 특례를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주당도 비슷한 논리로 국회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특별법에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제외는 담지 못한다”는 태도였으나, 최근 들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3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반도체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한 협조 요청에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민주당은 반도체업계 등이 참여한 토론회에서 해당 이슈에 관한 ‘정책 디베이트’를 열겠다고도 밝혔다. 김원이 민주당 산자위 간사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산자위 의원들은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을 반도체 특별법에 담는 게 적절치 않다고 보고 근로기준법에서 별도의 트랙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의견인데, 여전히 기업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의견이 있어서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지 전문가들과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이라며 “(논의의 결론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다음달 초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제목의 정책 디베이트를 삼성전자·에스케이하이닉스 노·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할 예정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과거 정책 디베이트에서 정부·여당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경우가 있어 노동계는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앞두고 정책 디베이트 등을 거치며 폐지 쪽으로 선회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정부·여당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편을 갈라 싸우다가, 이재명 대표가 주재하는 토론회 한번 개최하고 나면, 말과 정책을 바꾸는 일을 우리는 거듭 겪었다”며 민주당을 향해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를 흔들지 말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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