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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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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윤석열 대통령은 훗날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로서 잊지 못할 장면으로 무엇을 떠올릴까? 2023년 4월27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도 영광의 장면들 중 하나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당시 연설 뒤 의원석으로 내려온 윤 대통령과 ‘셀카’를 찍으려는 미국 의원들이 줄을 섰다. 인기 스타가 된 한국 대통령은 들떠 보였다. 나는 윤 대통령의 방미 행보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만은 조금은 흡족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한국인들의 노력과 성취가 만들어낸 장면 같아서였다.
오늘로 특파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나는 3년간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평가와 관심이 전과는 너무 다름을 크게 체감했다. 수십년 전에 이민 와 백발이 된 한인들은 오죽할까. ‘괜히 아등바등하며 태평양을 건넜나’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이도 있다. 그들의 모국이 전에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 평가를 받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경제, 문화 등에 대한 외국인들의 칭송은 한국인들이 실감하는 것 이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미국 당국자들의 과찬 배경에는 ‘이리도 훌륭한 나라를 우리가 키웠다’는 자부심 내지 자화자찬도 배어 있다. ‘키워줬으면 뭐라도 내놔야지’라는 뜻도 스며 있다. 자기들이 허리를 끊어놓은 한반도의 반쪽에 있는 사람들이 고투해 이룬 성과에 대한 오만한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칭찬 자체는 좋은 것이다. 부국에서 태어나면 개인적 노력과 상관없이 빈국 사람이 못 누리는 경제적 이득을 본다는 ‘시민권 지대(rent)’라는 말도 있다. 한국인들은 문화적 시민권 지대도, 국가적 평판 상승에 따른 시민권 지대도 누리게 된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이런 변화의 큰 수혜자다.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녔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이들과 그 사람들의 선대가 피땀 흘린 결과다.
윤 대통령의 12·3 친위쿠데타는 많은 것을 바꿔놨다. 한국의 이미지는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칭찬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강렬하면서도 후진적인 장면은 세계인들의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한국은 30년, 40년 전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국무부 장관도 아니고 부장관한테 “심각한 판단 착오”를 저질렀다고 꾸중을 듣는 처지가 됐다. 한국 외교부 장관은 밤중에 미국 대사 전화를 안 받았다는 핀잔을 들었다. 호의와 존중은 순식간에 냉담과 경멸로 바뀌었다. 한국 외교관들이 기를 펴고 미국을 상대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대통령은 나라의 위상과 평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지키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오천만의 얼굴에 이렇게까지 먹칠을 할 수가 있을까. 지도자는 한순간의 착오로 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트리기 쉽다. 그런데 그는 단순한 무능과 착오가 아니라 고의와 악의로 일을 벌였다. 그래 놓고선 역사에 남을 ‘현직 대통령 농성’을 벌이다 붙잡히자 “불미스러운 유혈 사태” 예방을 위한 자진 출석인 것처럼 떠들었다.
오천만의 명예를 짓밟고서 자기 명예는 그리 소중한가 보다. 망연자실이라는 것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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