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서 사흘간 마지막 콘서트
![]() |
10~12일 59년 노래 인생의 마지막 콘서트를 서울 KSPO돔에서 연 가수 나훈아. "이제 아낄 것도 없는 마지막이니 신명 나게 하고 가겠다"면서 의상을 15벌 갈아 입으며 열정적인 공연을 펼쳤다. /예아라예소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수 나훈아(78)가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은퇴 투어 공연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훈아는 10~12일 사흘간 5회 공연으로 59년 노래 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공연에서 감격에 북받치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이라고 했다. 나훈아는 199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설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중 스타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미주알고주알 들춰 보이면 환상이 깨진다.” 이날 마지막 공연에선 “평범하게 땅을 걷겠다”고 했다. 객석에선 “안 돼!” 하는 외침이 나왔다.
서울 잠실 공연은 나훈아가 가수 인생을 마무리하는 은퇴 전국 투어 공연의 마지막 순서였다. 그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를 통해 처음 은퇴 계획을 알렸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대전·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차례로 고별 인사를 전하는 공연을 열어왔다. 전 지역 공연이 매진됐고, 이번 서울 공연은 5회 차 7만장 티켓이 5분 만에 팔렸다.
서울 공연 중에서도 12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은 나훈아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오르는 무대로 가장 주목을 받았다. 나훈아도 평소보다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약 2시간 50분간 히트곡 23곡을 쏟아내며 수차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첫 곡 ‘고향역’부터 ‘18세 순이’까지 내리 6곡을 부른 직후 목이 멘 소리로 꺼낸 인사말은 “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다. “인생 처음 해보는 ‘마지막 공연’이라 이렇게까지 울컥할 줄은 몰랐습니다. 슬픈 노래가 아닌데도 울컥해 참기가 힘들어서….” 팬들에게 꽃과 편지를 받으면서 5분가량 공연이 멈추기도 했다. 긴 줄이 늘어선 걸 본 그는 고향 부산 사투리로 “오늘은 울 일만 천지 삐까리다. 나 우짜면 좋노”라며 눈물을 훔쳤다.
![]() |
나훈아의 마지막 콘서트에는 10~12일 사흘간 5회 공연에 약 7만명이 모였다. /윤수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17년부터 190회 공연을 해오면서 조명, 효과음, 모든 순간을 내가 기획 연출했다”고 나훈아가 강조한 이날 무대 곳곳에는 작별을 암시하는 장치가 많았다. 배경 영상과 의상 대부분에는 ‘1967~2025′라는 문구가 적혔다. 12일 막을 내리는 가수 인생이 ‘59년 차’임을 나타낸 것. 나훈아는 은퇴 투어 이전에도 자주 무대 전광판에 자신이 노래한 기간 집권한 대통령 사진을 띄워왔다. 이날도 “긴 가수 인생을 어찌 한 번에 보여줄까 궁리한 방법”이라며 박정희부터 윤석열까지 11명 대통령 사진을 띄웠다. “제가 말을 잘 안 듣다 보니 역대 대통령과 사이는 좀 안 좋았다”며 웃은 그는 “이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전 아직 노래한다”고 했다. 그는 2020년 KBS 콘서트 때는 “권력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했다.
나훈아는 이날 “제가 세계 가수 중 직접 작사·작곡해 부른 히트곡이 제일 많다. 귓맛 까다로운 여러분을 스승 삼은 덕분”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사랑’ ‘영영’ ‘잡초’ 등 자작곡만 1200여 곡. 전체 발매곡은 2600여 곡에 달한다. 고향에서 성공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기차 풍경인 ‘고향역’(1972), 성이 홍씨인 어머니가 그리워 만든 가을 풍경 속 ‘홍시’(2005), 광화문에서 봉천동까지 전철 두 번 갈아타며 출퇴근하는 아버지들을 노래한 ‘남자의 인생’(2017), 아버지 무덤에 핀 제비꽃에서 떠올린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인 ‘테스형’(2020)…. 긴 세월 서민들의 일상을 함께해 온 나훈아의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관객들은 큰 소리로 함께 불렀다.
그는 대표곡 ‘공’에 대해서는 “내가 써놓고도 우째 이런 가사를 썼나 싶다”며 “제가 TV나 언론에 워낙 안 나가니 후렴구 ‘띠리~’로 속이야기를 대신 풀려고 만든 노래”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팬들에게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나훈아의 2008년 ‘신체 절단설’ 기자회견도 이날만큼은 이 노래에 맞춘 유쾌한 농담 소재가 됐다. “‘(나훈아) 니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노’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하십니까. 내 보고 밑에 다 잘맀다(잘렸다) 카고. 지금은 웃지만,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 ‘내 있습니다’ 꺼내가 보여 주고 다니고 싶더라고. 띠리~!” 박장대소가 이어졌다.
나훈아가 이날 직접 통기타를 잡았을 땐 자신이 결코 노래 기력이 쇠해 은퇴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뒤집고 꺾는 노래를 내가 제일 잘한다 카는데, 그게 아이다. 제가 만든 기다. 저 이후부터 그런 소리가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무 데서나 꺾는 걸 보고 저러믄 안 되는데, 기가 찼다”며 “오늘 뒤집고 꺾는 진수를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울어라 열풍아’ ‘누가 울어’ ‘무시로’ 등을 내리 부른 그에게 큰 환호가 쏟아졌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1986년과 1996년에 불렀던 라이브 무대 영상을 배경에 틀어 놓고 듀엣 하듯 함께 불렀다. 과거의 젊은 나훈아 두 명과 2025년 현재 나훈아의 목소리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랑한 음색을 자랑했다. 가장 최신 발매곡인 ‘기장갈매기’(2023)는 노래에 맞춘 ‘갈매기 춤’ 안무를 직접 춰 보였다.
나훈아가 마지막 고별 인사를 “미련 같은 건 없다”는 가사의 노래 ‘사내’와 해외 민요 ‘작별’로 전할 땐 객석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노래 직전 “마이크를 내려놓는 게 우리 식구들에게 죄 짓는 기분이라 미안하고, 또 고맙다. 그래서 꼭 울지 않겠다”던 나훈아는 마이크를 드론에 날려 보내는 퍼포먼스를 펼칠 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이젠 장 서는 날에 직접 가서 막걸리에 빈대떡을 먹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마이크가 손에서 사라져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나훈아는 이윽고 객석을 향해 거수경례 후 무대 아래로 사라졌다. 장내에는 안내 음성이 이어졌다. “2025년 1월, 가수 나훈아의 목소리는 이곳 잠실에서 멈춥니다.”
[윤수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