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경민의 부트캠프]
포용성 결여 보여주는 차별적 법 집행과 혐오
저자들은 한국이 비록 1970~80년대 정치제도적으로 착취적이었지만, 포용적 경제제도로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다수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곧 민주화를 쟁취하면서 명확히 포용적인 국가로 성장했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위기에 처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에 봉착하고 취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최근 전세 사기 이슈는 또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경제 시스템마저 위험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 전세 사기 피해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법 집행과 혐오, 외국인이 전세 사기에 빠지기 쉬운 허술한 법적 구조는 대한민국이 과연 포용적인 사회인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확정일자 발급 절차 같은 행정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비점이다. 외국인은 확정일자를 받기 위해 외국인 등록증에 전입 날짜를 기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법무부 예약이 필요해 실제 발급까지 1주일 이상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지연은 피해를 예방할 기회를 놓치게 하며, 외국인 세입자들은 사기범들에게 더 취약해진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다년간 일해서 모은 쌈짓돈으로 전세 계약을 하는 경우, 확정일자를 받는 데 최소 7일이 소요된다. 악의를 가진 집주인이 전세 계약과 동시에 본인 집을 담보로 은행 담보를 왕창 끌어다 쓸 경우, 외국인은 그대로 후순위가 된다. 따라서 외국인에 대한 법적 보호망 미비로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며, 이를 악용하는 건물주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외국인 대상 전세 사기는 사회적 약자와 자본력을 갖춘 부자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경기도의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부터 여의도 금융가의 외국인까지 전세 사기에 노출돼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글로벌 국가를 지향해 왔고, 외국인 이민자의 원활한 한국 거주를 지원하기 위해 이민청 설립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한국에 온 외국인은 임차 형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가 한국의 대표적인 임차 계약이라 해서 덜컥 전세 계약을 했는데, 다년간 모은 전세 자금을 빼앗긴다면, 어느 외국인이 대한민국을 좋게 볼 수 있겠나?
현재 전세 사기 특별법은 외국인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긴급 주거 지원 기간이 내국인의 경우 최대 10년까지 가능한 반면, 외국인은 단 2년으로 제한된다. 외국인 피해자들은 장기적인 주거 불안을 겪게 되며, 내국인에 비해 심각한 차별로 작용한다. LH 우선 매수권 등 주요 보호 조치에서도 외국인은 배제돼 있어 피해 회복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대출 및 금융 지원에서도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내국인은 전세 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 금융 상품이나 대출 조건 완화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은 이러한 혜택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다. 대출 규제는 외국인 세입자들이 자금을 전액 투입해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게 하며, 사기 피해 발생 시 경제적 충격을 더욱 크게 만든다. 예를 들어 수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에서 외국인 피해자들은 전액 본인 자금으로 전세금을 납부했음에도, 피해자로 인정받은 뒤에도 공공 임대주택 지원이나 대출 지원을 받지 못했다.
행정적 절차와 제도의 문제뿐 아니라, 전세 사기 피해를 해결할 때도 차별을 경험한다. 법적 구제를 받는 과정에서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이 큰 문제로 작용하며, 한국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사기범들과의 법적 다툼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일부 피해자들은 비자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피해를 알리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외국인 피해자들은 사회적 시선과 편견 속에 더욱 고립되고 있다. 일부는 자신들이 혜택을 누리려는 것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언론 보도 역시 외국인 피해를 충분히 다루지 않으며, 대중은 외국인 피해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내국인과 동일한 법적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 차별은 단순히 제도적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사회적 포용성의 결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민 가서 악착같이 일해 성공한 재미 동포와 그의 가족들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회적 성공의 기반을 제공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심도 있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면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와서 최소한 자기 돈을 떼이지 않고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때 우리는 매우 부끄러운 나라에 살고 있다.
※부동산 트렌드에 대해 궁금한 점을 jumal@chosun.com으로 보내주시면 김경민 서울대 교수가 골라 답합니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