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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월출산 바라보며 그윽한 차 한 모금... 다산처럼 누려 볼까 [박준규의 기차여행, 버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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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정약용 유배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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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자락 강진다원. 한겨울에도 푸릇푸릇한 차밭이 월출산 비경과 어우러진다.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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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남도답사일번지로 소개할 정도로 역사와 문화 자원이 풍성한 곳이다.

강진까지는 버스로 이동할 수 있지만, 현지에서 농어촌버스를 이용해 관광하는 게 쉽지 않다. 이럴 때 ‘남도답사1번지 관광택시’를 예약(010-6320-0303)하면 현지의 베테랑 관광드라이버의 안내로 원하는 관광지를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다. 요금은 2시간 5만 원, 3시간 7만 원, 5시간 10만 원, 8시간 12만 원, 1일 15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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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여행을 할 때 현지에서 '남도답사1번지 관광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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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모든 것, 다산박물관·다산초당·백련사·사의재


다산박물관은 정약용과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오솔길을 따라가면 다산초당에 닿는다. 다산은 정조 사후 천주교에 연루돼 강진으로 유배됐다. 18년의 유배 생활 중 사의재에서 4년, 백련사 고성암(현 고성사 보은산방)에서 2년, 제자 이학래집에서 2년을 거주했다. 마지막으로 다산초당에서 10여 년을 보내며 18명의 제자를 양성하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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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도암면 다산박물관.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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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10여년간 머물며 저술에 몰두했던 다산초당.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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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은 원래 목조 초가였으나 1936년 노후로 허물어지고, 1957년 기와집으로 재건해 현재에 이른다. 주변에는 그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신의 성만 따서 바위에 새긴 정석(丁石)은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보여준다. 물을 떠서 차를 끓였던 약천(藥泉), 연못 중앙부에 쌓아올린 돌탑 연지석가산(連池石假山)에 시선이 간다.

이어 등장하는 천일각(天一閣)은 ‘하늘 끝’이다. 유배 생활 중 두 아들에게 쓴 편지에 “내가 하늘 벼랑 끝까지 밀려났다”는 심정을 천애일각(天涯一閣)으로 표현했다. 정조와 흑산도 유배 중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할 때마다 강진만(灣)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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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동백 숲길.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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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쓴 백련사 대웅보전 현판.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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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처마 뒤로 강진만 바다가 보인다.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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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며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함께 다녔던 오솔길을 따라가면 백련사에 닿는다.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의 ‘大’ 자는 사람이 힘차게 걷는 듯 기운이 넘친다. 바다 조망이 훌륭한데다 동백숲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이 여행객을 유혹한다.

배꼽시계가 울릴 쯤 사의재(四宜齋)로 향한다. 다산이 강진에서 처음 묵은 집은 주막집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였다. 주모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았는데 바로 사의재다. ‘생각을 담백하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필요한 것만’ ‘행동은 무겁게’ 네 가지를 실천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명칭이다. 사의재는 향토식당으로 운영된다. 신선한 반찬과 갓 나온 굴전, 따뜻한 쌀밥, 구수한 아욱국이 정성스럽게 차려진 다산밥상은 한 끼 식사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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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강진 유배 생활 중 처음 머물렀던 사의재.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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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의 다산밥상.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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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와 월출산이 어우러진 풍경


강진의 풍경 여행지로 월출산을 뺄 수 없다. 주변에 무위사, 백운동정원, 강진다원, 월남사, 이한영茶문화원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다 풍성하다. 어디든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위사(無爲寺)를 간다. 1430년에 지어진 주심포 맞배지붕의 극락보전에 세월이 켜켜이 쌓인 듯하다. 백운동원림은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원림과 함께 호남 3대 원림으로 꼽힌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합된 전통 정원이다. 별서정원 밖으로 나오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절경이 나타난다. 강진다원이 녹색 카펫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다. 월출산 기암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인근 월남사 터에는 백제 양식 삼층석탑이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역시 월출산과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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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 극락보전.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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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원림의 단아한 풍경.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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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기암 봉우리와 어우러진 강진다원.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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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양식의 월남사 삼층석탑. 월출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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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정은 이한영茶문화원. 다산이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간 뒤, 월출산 아래 살던 제자 이시헌은 스승이 알려준 방법대로 차를 만들어 보냈다. 다산이 세상을 뜬 뒤에는 그의 아들에게 보냈다. 이시헌이 세상이 떠난 뒤에는 그의 아들이 스승의 집으로 해마다 차를 보냈다고 한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제자의 후손 이한영은 일제로부터 강진 차를 지키고자 고유의 상표를 만들었는데, 바로 한국 최초의 차 상표로 등록된 백운옥판차다. 현재는 그의 손녀딸 이현정 원장이 옛 스승의 가르침대로 차를 만들고 있다.

봄날 어느 이른 새벽 월출산 아래 갓 피어난 연둣빛 찻잎을 상상하며 차를 마신다. 그윽한 차 향기에 취하고 돌담 너머 월출산 비경에 다시 한 번 취한다. 작설 1만5,000원, 모차 1만 원(1인 기준)이다. 다식이 곁들여지는 ‘백운옥판차 한상茶림’은 작설 4만9,000원, 모차 3만9,000원(2인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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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차문화원에서 보는 월출산 풍경.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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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차문화원의 백운옥판차 한상茶림(모차).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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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여유롭게 잡는다면 강진·해남·영암 광역관광 프로젝트 ‘강해영’을 권한다. 1박 2일이면 두 개 지역, 2박 3일이면 세 지역 여행이 가능하다. 강진의 다산초당·백운동원림, 해남의 땅끝마을·고산윤선도유적지, 영암의 기찬랜드․왕인박사유적지 등 다산 유적과 남도 명소를 두루 훑을 수 있다.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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