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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카페에 앉아 있었다. 국회의사당역에서부터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인파를 지켜보았다. LED 응원봉의 물결이 은하수처럼 펼쳐졌다. 아이를 어깨에 태운 아버지들,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들, 손주의 손을 잡은 노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이 시민들은 어떤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 저 응원봉 물결 속에서 나는 우리 국민의 성숙도를 읽었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인들이 바로 이 국회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열흘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 국회는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리고 지금, 여의도의 거리는 축제가 되었다. 유모차 행렬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부모의 어깨 위에서 응원봉을 흔들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왔어요"라고 말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우리 국민은 변했다. 2016년 광화문의 촛불과는 달랐다. 그때의 엄숙함과 절박함 대신, 이번에는 희망과 축제가 있었다. 가족들은 도시락을 펼쳐 놓고 피크닉을 즐겼다. 아이들은 응원봉으로 별자리를 그렸다.
베를린에서는 400여 명의 교민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개사해 불렀다지만, 여기 여의도에서는 100만의 시민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했다. 누군가 수유실로 쓰라고 버스를 세 대나 대여했다. 선결제 커피가 줄을 이었고, 따뜻한 핫팩이 아이들의 손을 데웠다.
이런 시민들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고, 평화롭게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그들은 더 이상 분노와 저항의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축제와 희망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외신들은 이런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AP와 로이터는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시위'를 강조했다. BBC는 '한국 시위 문화의 극적인 변화'라고 평했다. CNN은 특히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이런 국민에게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계엄령으로 위협하는 대신 대화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 군대를 동원하는 대신 국민의 뜻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아닌, 포용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눈빛은 단단했다. 피크닉을 즐기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 아버지는 어깨 위의 아들에게 말했다. "이게 민주주의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지."
우리는 성장했다. 1987년 거리에서 최루탄과 맞서 싸우던 그때와는 다르다. 2016년 촛불을 들고 엄숙하게 침묵하던 그때와도 다르다. 이제 우리는 축제처럼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런 국민들은 더 나은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 그들의 성숙함에 걸맞은 지도자를. 그들의 배려심에 걸맞은 지도자를. 그들의 평화로움에 걸맞은 지도자를.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우리는 또 기다린다. 그동안 여의도의 거리에서는 계속해서 가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100만의 별빛 같은 응원봉이 밤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부모와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러 나왔던 이 겨울밤을.
우리는 더 이상 독재자도, 권위주의자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대화하고 경청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민의 뜻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가. 계엄령 대신 소통을 선택할 수 있는 지도자가.
카페 창밖으로 또다시 가족들이 지나간다.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지만, 그들의 의지는 단단하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국민은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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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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