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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계엄세력 물리쳤다" 시민 함성 울려퍼진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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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표로 가결된 직후 환호하고 있다. 이번 집회는 촛불 대신 '응원봉'이 등장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시위 문화를 보여줬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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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민주주의가 이겼다!"

45년 전 계엄령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김 모씨(73)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김씨는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 표결이 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으로 끝난 것을 두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고령인 김씨가 강추위의 날씨에도 거리에 나선 이유다.

이날 오후 5시 무렵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이 가 204표, 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되자 김씨는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과 함께 "이겼다"며 소리쳤다. 그와 시민들이 터뜨린 함성은 땅을 울리고 하늘을 가득 메웠다.

두 차례에 걸친 표결 끝에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되자 김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과거 계엄령의 트라우마를 애써 지웠다. 김씨는 "당시에도 두려웠는데 지금 그런 일이 다시 생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탄핵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분노와 기쁨이 교차한 한겨울의 드라마였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까스로 국회에서 가결되자 시민들은 손에 쥔 깃발과 응원봉을 하늘로 치켜들며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모여 있던 시민들은 주황색 풍선을 다 함께 하늘로 날려보내기도 했다. 국회에서 표결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시민들은 가수 손담비의 히트곡 '토요일 밤에'를 개사해 "토요일 밤에, 윤석열 탄핵"을 노래하며 가결을 기원했다.

평소 대규모 집회를 주도한 것은 조끼를 입고 깃발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치는 조직적 참가자들이었지만, 이날 국회 앞을 이끈 것은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윤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마음으로 뜻을 모았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공병준 씨(25)는 "여야를 떠나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는 충암고 출신 동문들도 이날 집회에 동참했다. 충암고 출신인 신 모씨(50)는 "동문 3명과 같이 나왔다. 어디 가서 충암고 나왔다는 걸 밝히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우리가 직접 끌어내렸다고 말할 수 있어 후련하다"며 "이제 다 끝났으니까 빨리 끝내고 내려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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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된 '탄핵반대' 집회에 인파가 몰렸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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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김지후 군(16)은 "지하철로 사람들이 몰린다고 해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로 왔다"며 "아직 투표할 수 없지만 유권자로서 내 한 표가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여의도 집회에 참석한 이혜림 씨(30)는 "행복하고 무척 홀가분하다"며 들뜬 마음을 보였다.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민연홍 씨(30)는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지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신나서 춤이 절로 나온다. 마음이 한뜻으로 모여 있어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여의도에선 집회에 참여하기 위한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며 장관을 연출했다. 여의도역에서 국회의사당 정문까지 1㎞에 달하는 거리가 시민들로 가득 차며 집회 인원은 실시간으로 늘어났다. 집회 장소로 인파가 급격하게 몰리면서 집회 시작 시간 전부터 지하철역이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오후 2시 45분부터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을 무정차 통과했고, 5호선도 2시 58분부터 여의도역을 정차 없이 지나기도 했다. 여의도 내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하면서 뒤늦게 집회에 참가하려는 시민들이 서강대교, 마포대교 등을 통해 걸어서 집회 장소로 이동하는 행렬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날 집회 참석 인원은 주최 측 추산 최소 200만명 이상,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는 20만8000여 명이었다.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 '내란 수괴 체포' 등이 적힌 푯말을 들고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탄핵 표결 시간이 가까워지자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숨을 죽이며 전광판에 나온 본회의 중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시민은 발걸음을 멈추고 탄핵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기다림 끝에 탄핵안이 가결되자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임 모씨(62)는 "평소에 윤 대통령의 독선적인 모습을 보고 저런 사람이 과연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고 더는 참지 못하고 지인들과 함께 나왔다"며 "우리 같은 시민이 보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민심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회의사당 주변 카페에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추위를 녹이기 위해 커피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 카페는 "시민, 경찰 부담 없이 오세요"라며 커피를 무료로 나눠줬다. 일부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집회에 참여는 못하지만, 인근 카페에 커피 선결제를 해뒀다. 한 잔씩 받아 가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결제한 식음료를 받을 수 있는 카페 위치나 실시간 재고를 알려주는 온라인 사이트('시위도 밥 먹고')도 생겼다.

한편 광화문에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맞불 집회가 주최 측 주장 600만명, 경찰 비공식 추산 4만1000여 명 규모로 열렸다. 자유통일당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등이 주도한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는 야당과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주장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판했다. 오후 1시 집회가 시작되자 동화면세점에서 덕수궁 대한문 인근까지 이어지는 차도가 모두 인파로 메워져 탄핵소추안 부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자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은 동시에 탄식을 쏟아냈다.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는 이날 국회 표결에서 무효가 8표 나온 것을 두고 "국회에서 투표한 것까지도 가짜"라고 주장하며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이날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정권 퇴진 집회에 대해 안전 관리를 최우선에 두고 '최소 대응' 방침을 세웠다. 전날 밤 현직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비상계엄 사태로 구속되면서 지휘부가 부재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교통경찰 180여 명을 배치해 혼잡 최소화에 나섰다.

[박동환 기자 /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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