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범위·한계 안 정해
일부 “현상 유지 머물러야”
과거 고건 땐 거부권 행사
황교안 땐 헌법재판관 임명도
한 총리는 헌법과 정부조직법 등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탄핵 소추당하면 그 권한을 대행한다. 다만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권한이 정지될 뿐 대통령직은 유지한다.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즉각 파면되는데, 그 이후로도 다음 대통령이 선출될 때(대통령 파면 후 60일 이내)까지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부통령이 승계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대통령직 승계 제도가 없다.
한 총리는 권한대행 자격으로 고위 공직자 인사권 등 각종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 9명 중 3명을 임명할 수 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그 밖의 공무원을 임명·해임할 수 있다.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거나 파기하고, 전쟁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등의 외교권도 대통령 권한이다. 군 장성 인사권을 포함한 군 통수권도 대통령에게 있다. 한 총리는 이런 권한과 함께 법률안에 대한 재의 요구(거부권), 사면권, 긴급명령발동권, 계엄선포권 등도 이론상 행사할 수 있다.
그래픽=백형선 |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할 뿐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나 한계를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일부 헌법학자는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권한대행은 국민이 선출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 차원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권한대행의 직무는 ‘현상 유지’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기관 요인 임명,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안 재의 요구, 장관급 이상 공직자 임명 등은 권한대행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대통령 권한대행들은 대통령 권한의 일부를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2004년 3월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사면법·거창사건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2017년 3월 황교안 전 총리는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후임에 이선애 변호사를 임명했다.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 조치들이 무효가 되지는 않았다.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야당이 일방 처리한 국회법·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고, 한 총리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도 한 총리에게 황 전 총리 때처럼 현재 공석인 국회 선출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판관 9명 중 3명 자리가 비어 있어, 이를 그대로 두면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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