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쿠데타 45돌이 되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3일 비상계엄 선포는 “입법 폭거를 일삼고 오로지 방탄에만 혈안되어 있는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려 했던 것”이라며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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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망상과 편집증적 증상을 보이는 최고권력자의 위험천만한 말과 행동으로 전 국민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3일 밤 느닷없는 비상계엄 발표로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12일엔 독기 가득한 29분짜리 궤변을 들어야 했다. 국회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끌어내고, 정적들을 체포하라고 그가 직접 지시했다는 진술들이 군과 경찰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는데도 그는 태연작약했다. 국회 질서유지를 위해 군과 경찰을 보냈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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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이 옳다는 과도한 확신과 자기애, 그리고 정적들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의심과 망상에 사로잡힌 최고권력자가 광기에 빠져 수많은 이들을 숙청했던 역사 속 폭군의 모습이 이러하였으리라. 그런 폭군 치하에서 나라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고 백성은 도탄에 신음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꼭 그런 상태에 빠지기 일보직전이다.
그의 망상이 도대체 어디까지 갔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군경을 동원해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고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를 최우선으로 체포해 계엄해제 의결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정적들을 납치해 남태령 군기지 지하 벙커에 감금하려 했다. 북파 특수임무 훈련을 받은 HID 최정예 요원들까지 차출해 대기시켰다. 도대체 그는 무슨 일까지 저지르려 했던 것일까. 수사를 통해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명태균씨가 얘기했다는 꼭 ‘5살짜리 꼬마에게 총을 들려준 격’이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내란범 윤석열 탄핵 전국 긴급행동’ 집회가 열려 응원봉과 손팻말을 든 참가자들이 탄핵을 외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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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지난달 발생했던 북한 무인기 사건에 군이 연루됐다는 의혹, 북한 오물풍선에 원점타격까지 압박했다는 의혹에까지 이르면 정말 오싹해진다. 정말로 북한과의 국지전을 유도할 심산이었던가. 나라와 국민들은 전쟁의 참화에 고통받아도 자신의 권력만 유지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무도한 심보 아닌가.
공교롭게도 북한과 러시아는 군사동맹 조약 비준을 마친 터였다. 이런 의혹이 맞다면 전면전으로 확대돼 러시아군의 개입까지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차 세계대전도 유럽의 변방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사라예보 사건을 빌미로 독일이 의도적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듯이 한반도에서도 그런 오판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번 내란 사태는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 동서고금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패턴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독재자적 본성을 지닌 폭군이었다.
12일 그가 티브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혹시나 진심어린 사죄를 하거나 하야를 선언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국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내란을 획책해 실행에 옮기고,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극우 보수 지지층을 향해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 ‘1차 내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자신의 수족들이 잘려나가자 외부의 극우 보수 세력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두가지가 주목된다.
첫째는 북한과 연계된 부정선거 의혹 제기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근거없는 음모론을 그대로 반복했다. 자신이 이들의 주장을 밝히려 계엄령까지 내려 선거관리위원회 조사까지 하려 했으니 자신을 지켜달라는 주문이다. 일종의 내란 선동 혐의가 짙다. 실제로 일부 극우 인사는 유튜브에 출연해 ‘대역전극이 시작됐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마당에 이런 선동에 휘둘릴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둘째는 수사 대응 가이드라인 제시다. 그는 계엄령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했다. 이미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의 12·12 군사반란 사건 판결에서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 대상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그가 궤변을 늘어놓는 데는 이번 내란 사태의 가담자들에게 대응 전략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벌써 그의 말이라면 모든 것을 따르는 ‘예스맨’ 김용현이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김용현은 10일까지만 해도 “모든 책임은 오직 저에게 있다”며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3일엔 변호인단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한 통치 권한”이라며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는 국민의힘 내 친윤세력의 움직임이다. 집권여당으로서 이런 사람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고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에게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대통령을 감싸고 있다. ‘체리따봉’ 문자 논란으로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던 ‘원조 윤핵관’ 권성동 의원이 다시 원내대표로 등장했다. 구원투수로 나선 셈이다. 국민의힘을 ‘윤석열 사수대’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년 봄으로 예상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최종 판결까지 시간을 벌면서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노림수도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과 국민의힘 친윤계는 이해관계가 통한다. 대통령의 광기와 폭정이 속속 드러나고, 국가적 위기 상황을 조속히 끝내야 하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권력을 놓치 않으려는 기득권 정치인들의 술수에 기가 막힌다. 정치인으로서 소명을 잊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대의에 거스르는 타락한 정치인들의 전형이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권력 추구를 정치인의 정상적 속성으로 보면서도 대의에 대한 열정, 책임의식에 입각한 행동, 사태를 냉철하게 보는 균형감각을 갖지 못할 경우 정치적 무능력자로 전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정치인의 권력 추구가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권력에 도취되어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잃었을 때 정치가의 타락이 발생한다고 설파했다. 베버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1919년 독일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며 이 책을 낸 것인데,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 적지않다고 본다.
최고권력자의 광기로 시작된 이번 친위 쿠데타(12·3 내란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험하고 있다.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1972년 친위 쿠데타(유신), 1979~80년 신군부의 쿠데타에서 정치군인들은 저항하는 시민들을 강압적으로 진압하며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최정예 군인들을 국회에 투입했으나 국회의원들과 보좌관,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에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군의 중간 지휘관들이 의원들 끌어내기와 체포 명령을 거부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번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튼실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1960년대 이후 군부독재에 맞서 수십년간 이어온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다. 민주화 이후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독재자와 그 동조자들의 말로를 보며 후세대들이 민주주의를 학습한 효과다. 1987년 6월항쟁, 2016년 촛불혁명에 이어 2024년 다시 무도한 최고권력자를 단죄하려는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국회가 저항의 중심이 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경험이다. 2016년에는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중심이 되고, 나중에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 이번에는 국회가 먼저 계엄을 거부하는 신속함과 결단력을 보여줬다. 주권자들을 대표하는 제1의 시민 권력기구로서 제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에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과거 민주주의 성지가 명동성당, 시청앞, 광화문 일대였다면 이번에는 국회앞이 되었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국회의원들과 그들의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아직 내란 사태는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이 대의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 배신당’으로 낙인찍혀 해체의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들의 응원봉은 철퇴가 되어 그들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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