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국내 첫 만화 세계일주기 신문 연재, 피라미드 구경하고 북극점 횡단
한국 첫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1926년 ‘세계일주’(2월2일~8월14일·총 145회)편을 실었다. 최멍텅이 비행학교를 나온 친구 윤바람과 비행기 세계일주에 도전한다는 설정이다. 그림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최멍텅, 윤바람이 영화배우 채플린 안내로 여행하는 장면이다. 조선일보 1926년 6월20일자에 실린 '멍텅구리 세계일주' 채플린 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론 허구다./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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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로 세계일주중인 최멍텅과 윤바람이 인도에 들렀다. 간디를 비롯한 인도 국민들이 둘을 환영하며 만세를 부르자 “여기는 만세 불러도 괜찮은가 보다”라고 말한다. 기마경찰이 “안녕 질서를 방해할 염려가 있으므로 군중의 해산을 명한다”며 해산시킨다. 마지막 해설은 ‘동병상련’. 식민 통치의 수난을 에둘러 표현했다. 192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된 국내 첫 네컷만화 ‘멍텅구리 세계일주’(만화보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mtguri/mt2_content_wide.jsp?tid=mt150069001&tno=A)다.
1926년 만화로 그린 첫 세계일주기가 신문에 실렸다. 선박이나 기차가 아니라 당시 첨단 운송수단인 비행기를 타고 일주하는 내용이었다. ‘멍텅구리’ 시리즈 다섯번째인 ‘세계일주’(2월2일~8월14일·총 145회)였다. 주인공 최멍텅 친구 윤바람이 조종사 면허를 따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한다는 설정이다.
조선인의 세계일주는 1883년 보빙사(報聘使)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유럽을 일주하고 돌아온 민영익, 서광범, 변수 등이 최초이다. 이들이 남긴 여행기는 전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유학하다 유럽을 여행한 유길준이 1895년 ‘서유견문’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세운 출판사에서 냈지만 1000부뿐이었다. 그나마 친지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고 한다.
‘멍텅구리 세계일주’는 일간 신문에, 그것도 만화로 연재한 조선 최초의 세계일주기였으니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알 수있다. 나혜석, 영친왕이 세계일주에 나섰다가 여행기를 책이나 잡지에 발표한 것은 1928년 이후였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방문한 최멍텅 일행. 배를 타고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갈 때,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반드시 거쳤다. 조선일보 1926년4월2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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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희망봉, 북극점까지 등장
최멍텅의 세계일주는 먼저 만주와 중국으로 향했다.만리장성, 자금성을 소개한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이집트를 지나 남아공 희망봉까지 날아간다. 이어 모로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폴란드, 영국, 노르웨이를 훑는다. 중간에 안도라, 모나코 같은 소국도 등장한다. 피라미드, 에펠탑, 독일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이 소개된다. 아문센이 1926년 5월 비행선으로 최초로 횡단한 북극점도 비행기로 지나갔다. 당시의 세계적 뉴스를 만화에 끌어들인 것이다.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향한 멍텅이 일행은 찰리 채플린의 안내로 샌프란시스코를 구경한 뒤 태평양 횡단에 도전한다. 그러다 폭풍우에 휘말려 추락하고 극적으로 구조돼 하와이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비행기로 인도를 방문한 최멍텅, 윤바람이 인도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를 만났다. 물론 허구다. 조선일보 1926년4월1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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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무솔리니,아브드 엘 크림 만나
멍텅구리는 심양(장작림), 천진(여원홍), 북경(단기서), 상해(당소의), 광동(왕정위)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을 만난다. 인도의 간디, 모로코 독립운동가 아브드 엘 크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까지 만난다. 세계 지리, 풍속은 물론 정치, 외교 지식까지 가볍게 전달한다.출판계를 풍미한 이원복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원조쯤 될 것같다.
◇ ‘한국 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
1924년 10월13일 탄생한 국내 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1924년 9월 조선일보를 인수해 이상재 사장을 추대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 조선일보’의 기획이다. ‘멍텅구리’란 말이 유행어로 떠오르고, 1926년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멍텅구리’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인기를 누렸다. ‘한국 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다.
최멍텅이 친구 윤바람과 함께 비행기 세계일주에 도전한 첫 회. 만화로 그려 신문에 연재한 첫 세계일주기였다. 조선일보 1926년2월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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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파 언론인 김동성(발행인)이 기획하고, 당시 신문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상협(편집고문)과 민세 안재홍(주필)이 스토리 구성을 맡았다. 산수화 대가인 심전(心田) 안중식의 양대 제자인 심산 노수현과 청전 이상범이 만화를 그렸다. 노수현과 이상범은 한국화를 정통으로 배운 예술인들이었다. 노수현은 광복 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길렀고, 이상범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 작가로 떠올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최멍텅, 윤바람이 채플린 안내로 미국을 여행했다. 물론 허구다. 조선일보 1926년 6월2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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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텅과 옥매의 줄다리기
‘멍텅구리’는 충청도 부농 아들인 키다리 최멍텅과 그 친구인 땅딸보 윤바람이 평양 출신 기생 신옥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13일 시작, 1927년 8월20일까지 연재됐고, 1933년2월 26일 재등장, 그해 8월2일까지 연재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만화는 모두 744편이다. ‘헛물켜기’ ‘연애생활’ ‘자작자급’ ‘가정생활’, ‘세계일주, ‘꺼떡대기’, ‘가난사리(살이)’, ‘사회사업’, ‘학창생활’, ‘또나왔소’ ‘모던 생활’ ‘기자생활’ 등 시리즈 12편이다.
<멍텅구리 만화 보러가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toon_comics.html>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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