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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아내를 늘 30대로 보이게 한다, 욕망이 만든 '마법의 AI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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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AI ‘자동 보정 안경’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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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는 강아지가 더는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다면, 이 제품이 필요하실 겁니다.”

그 안경을 쓰면 다 자란 성견도 하룻강아지처럼 보였다. 강아지 시절 찍어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업로드하면 인공지능(AI)이 모델링한 뒤, 실시간 변형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기술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로딩 속도도 빨랐고, 배경이 일렁거리는 등의 잡티도 전혀 없었다. 착용감은 평범한 일반 안경과 같았지만 마법 같은 기술력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성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약간의 논란도 있었지만 안경은 전 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회사는 안경 판매 이후 애견 유기 사건이 극도로 줄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제품의 대히트로 여러 유사 상품이 쏟아지던 어느 날,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여자는 이렇게 말하는 중이었다.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항상 그 안경을 끼겠다고 맹세해 줘요.”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그녀, 앨리스의 요구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고, 남자도 몇 번이나 진지하게 맹세했다. 그녀가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지금 이 나이’의 데이터를 업로드한 그 안경을 항상 쓰겠다고. 아름다움에 대한 앨리스의 집착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30대가 되고 더 늙어가더라도 내 눈에는 항상 지금의 모습으로 보일 거야. 난 평생 그 안경을 쓸 테니까.”

결혼 후 남편은 약속을 지켰다. 원래 눈이 나빠 안경을 써왔던 데다, 요즘 안경은 워낙 초경량이라 귀에 걸친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24시간 안경을 끼고 있어도 거슬릴 일이 전혀 없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안경을 벗으려 하면, 앨리스는 당장 이혼하느니 마느니 길길이 날뛰었다. 눈에 장치를 이식하는 ‘안구 임플란트’가 발전하면서 남편은 이식 시술까지 받았다. 그래야 그녀가 불안해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 고마워. 이제 당신보다 먼저 잠들고, 늦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항상 당신 눈에 예뻐 보이고 싶어.”

조선일보

일러스트=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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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욕망은 강력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그녀는 남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경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도 항상 안경을 썼으면 해.” “아이까지도?” “성인이 되면 안구 임플란트도 이식하고.” 앨리스는 친정 식구들과 친구들에게도 부탁하고 다녔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에서 안구 임플란트가 대유행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녀의 부탁은 간단했다. “내 데이터를 넘겨줄 테니까 프로그램을 설치해 줘. 1분도 안 걸리는 일이잖아. 응?”

대부분은 수락했지만, 뒤에서 그녀를 험담했다. “쟤는 나이가 몇인데 계속 저렇게 외모에 집착한대?” “냅둬. 어려서부터 유명했잖아. 집에서 공주처럼 키웠다던데 뭐.” “아니 그래 봤자 다 허상이잖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지, 저게 뭐람?” 앨리스는 괘념치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시선’이라도 더 보정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기행이 유명해지면서 실제 지역 방송국에서 그녀를 취재해 가기도 했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에요. 저를 비웃고 싶다면 화장품을 바르는 모든 사람도 비난하세요.”

사람들은 그녀를 나잇값 못 하는 우스운 사람이라며 조롱했다. 다른 시각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안구 임플란트 제조사, 대기업 태슬라였다. 기업은 언제든 돈 벌 방법을 강구한다. “고객님이 바뀌지 않아도 고객님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면, 고객님이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고객님이 원하는 고객님의 모습을 월 정액으로 결제하세요. ‘태슬라 아이즈’를 장착한 사람들의 눈에 고객님은 ‘그렇게’ 보일 겁니다.”

긴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본 앨리스는 1년 치를 결제했다. 업계 점유율 1위 기업의 매력적인 옵션 덕분이었다. 광기라고 불러도 될 그녀의 모습에 남편은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 “당신 죽을 때까지 그럴 거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평생 외면할 거냐고! 세월이 흐르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야. 난 당신과 자연스레 늙어가고 싶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고.”

“난 싫어.” 앨리스의 단호함에 남편은 질려버렸다. 사실 아내에게 다 맞춰주면서도 속으로는, 언젠가는 깨닫게 되리라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당신도 노인이 되면 그땐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되겠지.” 남편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수십 년 뒤, 그가 어쩌고 있을지 상상도 못 한 채.

먼 훗날, 앨리스의 장례식.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하고자 많은 조문객이 찾아왔지만, 남편은 장례식장 입구에서 연신 허리를 굽히며 그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아내의 마지막 유언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태슬라 아이즈 제품을 착용하지 않은 분들은 고인의 마지막을 보실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꽃으로 둘러싸인 채 관 속에 누운 앨리스는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픽션입니다.

[김동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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