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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한국인도 모르는 한식 '꿀떡 시리얼'… 어라, 이게 왜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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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해외에서 난리 났다는

’꿀떡 시리얼’ 먹어보니

서울 인사동 한 떡집에서 “꿀떡 있어요?” 묻자 “명절도 아닌데 왜 젊은 애들이 꿀떡들을 찾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9일 낮 12시. 인근 떡집 두 곳을 돌아 간신히 찾은 쑥색·분홍색·흰색 꿀떡. 떡값 4000원을 내고 흰 우유 두 팩을 사 회사로 왔다. 자, 요즘 국내외 할 것 없이 유행한다는 ‘꿀떡 시리얼(Ggultteok Cereal)’ 재료 준비 완료.

한국인도 모르는 한식 레시피가 해외에서 유행하고 있다. 따뜻한 쌀밥에 얹어 먹는다는 ‘매미 김치’ 같은 괴식이 아니다. 심지어 맛있다. 뒤늦게 우리나라에 소개돼 한국인 무릎 탁 치게 만드는 음식이 여럿이라는데. 이름하여 ‘식문화 역수입’ 현상. 꿀떡 시리얼도 그중 하나다. 그럼 제가 한번 만들어 먹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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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우유에 쑥색·분홍색·흰색 꿀떡이 퐁당. 외국서 “한국 디저트”로 소문났단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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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떡, ‘떡상’하다

갓 만든 따끈한 꿀떡일 필요는 없다. 언제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냉동실 안 딱딱한 꿀떡도 OK. 우선 떡 안의 꿀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가위로 떡에 흠집을 낸다. 그릇에 담아 우유를 붓는다. 끝. 시리얼처럼 우유를 부어 먹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떡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꿀과 고소한 우유의 조합, 떡의 쫀득한 식감이 예술이다. ‘아는 맛’인데 맛있다. 한마디로 ‘환상의 조합’. 한국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횟집 등에서 ‘코리안 콘치즈’를 시식하고 “치즈도 흔히 먹는 음식이요, 마요네즈도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나” 한탄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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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갓 만든 따끈한 꿀떡일 필요는 없다. 언제 얼린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냉동실 안 딱딱한 꿀떡도 OK.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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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없는 꿀떡 시리얼 레시피는 “한국 디저트”라며 해외 인플루언서 중심으로 먼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으로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외국인이 올린 틱톡 게시물만 50만건 이상. “버블티와 비슷한데 더 쫀득하다” “간단한데 곡물 시리얼보다 든든하다” “(한국어로) 마싯써요. 따봉~!”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던 떡의 인기가 떡볶이에 이어 꿀떡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떡이나 쌀과자 같은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2억5000만달러(약 3500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 넘게 늘었다. 떡의 ‘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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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맛’인데 맛있다. 한마디로 ‘환상의 조합’.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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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왜 맛있어?

이런 음식의 특징은 한국에 없는 K푸드 레시피가 해외 젊은 층 사이 먼저 등장하고,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 목욕탕 갈 때 필수템으로 여겨지는 단지 모양 바나나 우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은 ‘바나나 커피 우유’도 외국에서 먼저 열풍이 불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 음식에 익숙해진 외국인들이 한식을 친근하게 느끼며 자국에서 먹듯 변형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편의점 음식에 익숙한 ‘편순이’ ‘편돌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제조법과 꿀 조합을 탄생시켜 제조사마저 깜짝 놀라게 하는 현상과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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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라는 회오리 오이소박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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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레시피를 따르지 않기에 오히려 참신하다. ‘회오리 오이소박이(Spiral cut cumcumber kimchi)’가 대표적. 김칫소를 만들어 무치는 법은 같은데 오이를 자르는 법이 다르다. 오이 허리를 서너 갈래로 갈라 소를 넣는 대신 노점상 ‘회오리 감자’처럼 나선형으로 잘라 버무린다.

역시 해외에서 유행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한 역수입 사례. 건강한 음식 조리법을 올리는 한 미국인 유튜버가 처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영상은 조회 수 2100만회를 넘었다. 이후 우리나라 유튜버 사이에서도 ‘장안의 화제’로 소개되며 “식감이 좋다” “꼬불꼬불 재밌다”는 반응. 조회 수 3억회를 넘긴 영상도 있다.

◇모르는 맛도 무섭다

색다른 조합으로 한식을 즐기는 외국인이 늘어가고 있다. ‘해외에서 유명한’ ‘해외 야시장에서 인기 많은’…. 분명 우리나라 라면으로 요리하는 국내 유튜버 영상인데 제목마다 “해외에서 인기”라고 적혀 있다. 말레이시아 야시장의 한 점포에서 현지식과 적절히 조합해 처음 팔기 시작했다는 ‘불닭볶음면 오믈렛’(Buldak omelet)이란다. 주인장이 조리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조회 수 3000만회를 넘었다.

퓨전 한식이야 과거에도 있었지만 일반인이 따라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중적으로 퍼지기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얇게 편 반죽에 달걀, 양파, 다진 고기 등을 넣은 현지 음식 ‘므따박’(Murtabak)으로 불닭볶음면을 돌돌 감싼 이 음식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수입 현상이 우리 식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 오이김치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은 아니다”라는 설명에 “그럼 전통 오이김치는 뭐냐, 궁금하다” 혹은 “안에 넣은 라면은 뭐냐” “한국의 불닭볶음면” 등의 외국인 반응이 나오기 때문. 한 한국인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데 모르는 맛도 무섭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Thank you.”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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