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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증오와 혐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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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무튼, 레터]

조선일보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5권으로 구성된 2010년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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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하다” “대선에서 졌을 때보다 충격적이다” “환골탈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승리는 기약조차 할 수 없다”…. 11대4로 참패한 7­·30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반응. 2014년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라고 썼다.

정치와 선거는 유권자 20%가 결정하는 싸움이다. 유권자 중 보수와 진보의 고정 지지층이 각각 30%라고 해보자. 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요지부동이다. 나머지 40% 중 20%는 아예 정치를 비토하는, 투표하지 않는 세력이다. 결국 남은 20%의 유권자가 당락을 결정짓는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태도’에 큰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싸가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신간 ‘한국 현대사 산책(2010년대 1~5권)’을 펴냈다. 그는 머리말에서 “우리 정치가 국민적 원성의 대상이 된 것은 평온의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며 “욕망과 열정은 들끓지만 소통과 상생은 없다. 아예 평온을 죽이려는 제도와 관행도 있는데, 그게 바로 ‘승자 독식’”이라고 지목했다.

싸움에서 질 경우 모든 걸 다 잃는다고 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그런데 승자건 패자건 ‘승자 독식’을 바꾸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판에 침을 뱉길 주저하지 않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주변을 둘러보시라. 정치가 위대하다는 걸 절감할 게다. 고등 실업자가 된 사람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대규모로 줄 수 있는 건 정치뿐이다.”

정치는 원칙으로 위장하는 밥그릇 싸움이다. 선거를 전후로 전국이 밥그릇 배분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정치 과잉’ 상태가 지속된다. 강 교수는 “밥그릇 지명권의 상당 부분을 시민사회에 돌려줘 정치의 타락한 권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편을 갈라 집단적 증오와 광기 대결을 벌일 때 어느 편에도 속할 수 없다면 더 괴롭다. 싸우는 양쪽은 승리에 대한 희망을 갖겠지만, 그 허망함과 부질없음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어떤 위로도 없이 외면당하거나 비난받는다.

강 교수는 2010년대를 ‘증오와 혐오의 시대’로 규정했다. 싸가지 결핍이 선거를 필패로 만든다. 2024년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의 말마따나 새로운 세대가 ‘진보’의 이름으로 새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 ‘아픔’도 껴안아야 한다. 증오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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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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