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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6 (일)

경제 회복한다던 정부, 尹탄핵 앞두고서야 "경기 하방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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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13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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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경제가 하방(下方)할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대내외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기 낙관론을 펴다 뒤늦게 경고등을 켰다.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서다.

기획재정부는 13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의 확대로 가계·기업의 경제 심리가 위축하는 등 하방 위험 증가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그린북은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 공식 평가를 담은 보고서다. 이번 그린북은 '탄핵 정국'에서 정부가 내놓은 첫 경기 진단이라 관심을 모았다.

주목할 만한 건 처음 등장한 ‘경기 하방 위험’ 진단이다. 기재부는 지난달 그린북에서 7개월 만에 “내수 회복 조짐”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대신 "완만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는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줄곧 유지한 “경기 회복” 표현을 빼면서 부정적 전망이 짙어졌다. 지난달까지 “대내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던 문구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바꿨다.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경제기관이 최근 줄줄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전망치를 2% 안팎까지 낮춘 상황에서 처음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진단이 (민간과 달리) 기대치까지 다소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라며 “정확한 경기 인식이 경제 정책을 만드는 출발점인데 탄핵 정국에 접어들고서야 뒤늦게 진단 기조를 바꿨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경기 낙관론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하면서 “경기가 둔화 국면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디플로맷은 “한국 경제 부총리의 진단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기재부는 이번 그린북에서 ‘탄핵 정국’ 등 상황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연말 소비와 투자 심리를 짓누를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 송년회 등 행사가 취소돼 ‘연말 특수’가 사라졌다. 일부 국가가 한국을 여행위험국으로 지정해 해외 관광객도 줄어들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에는 정치적 불확실성도 포함된다”며 “2016년 12월(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충격이 얼마나 됐다거나,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나와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린북에 나온 주요 지표를 보면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도 경기는 소비ㆍ투자 등 내수 회복세가 미약한 모습이었다. 10월 소매판매는 준내구재(4.1%)와 비내구재(0.6%) 증가에도 내구재가 5.8% 감소하면서 전월보다 0.4% 감소했다. 기업의 설비투자도 같은 기간 5.8% 줄었다. 앞으로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같은 기간 0.1포인트 떨어졌다. 수출은 지난달까지 전년 대비 증가 폭이 4개월 연속 줄었다. 다만 경제의 또 다른 축인 수출은 견조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증시와 원화가치가 급락(환율은 상승)하고, 국고채 금리가 오르는 등 영향까지 반영한다면 향후 경기 진단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을 해소할 1차 변곡점은 14일 국회의 선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경우 혼란이 다소나마 잦아들 수 있다.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분류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조차 “대통령 탄핵이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경제에 낫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과거와 달라진 대외 상황이 변수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9일 펴낸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 보고서에서 “2004년(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은 중국 경기 호황, 2016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할 수 있었다”며 “내년 한국은 중국의 경기 둔화, 미국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이란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ㆍ무디스ㆍ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이날 기재부와 만나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S&P 측은 “최근 사태에도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금융당국의 신속한 시장 안정화 조치는 한국의 경제시스템이 얼마나 강건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언급했다. 무디스 측은 “한국경제 하방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에 공감한다”라며 “한국의 견고한 법치주의가 높은 국가 신용등급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치 측은 이번 사태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기재부가 전했다.

최상목 부총리는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어 “주말 정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나타날 경우 추가 시장안정조치를 적기에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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