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는 체인지앨리(Change Alley)의 커피집에서 시작했다. 이 좁은 골목은 로열익스체인지와 롬바드스트리트를 이어주는 최단 지름길이다. 특히 옛날에는 롬바드에 우체국이 있었기 때문에 로열익스체인지의 상인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이 골목에 1680년부터 조나단 커피집(Jonathan's Coffee-House)이 있었다. 그 자리에 파란색 동판이 붙어 있다. 동판에 따르면 원래의 커피집은 1778년까지 98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건물은 1748년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지어졌는데 1761년에 150인의 증권인들이 조나단 커피집에서 증권거래 단체를 결성했다. 1773년에 스위팅앨리에 자기들 건물을 지어서 이사했고 뉴 조나단이라고 했다가 증권거래소로 이름을 바꾸어 1801년 공식 출범했다. 지금은 세인트 폴 대성당 옆에 있는 오늘날의 런던증권거래소다.
아메리카 신대륙에서는 17세기 말부터 뉴욕에 커피집들 생겨나기 시작했다. 1호 커피집(King's Arms)은 오늘날의 시더스트리트에 있었다. 트리니티교회 인근 브로드웨이와 교차하는 지점이다. 당시 하나뿐인 커피집이었다. 'The Coffee House'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층집이어서 뉴욕 항구를 보는 전망도 좋았다고 한다. 1763년의 한 기록을 보면 킹즈 암즈는 나중에 선술집으로 업종을 바꾼 것 같다. 커피집들이 점차 많이 생겨나서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대륙에서는 커피가 유럽에서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물론 차가 더 많이 소비되었지만 1773년에 영국의 조지 3세가 아메리카로 밀수입되던 네덜란드 차를 견제하기 위해 Tea Act를 제정하자 그 유명한 '보스턴 티 파티' 사건이 발생했고 그 후부터는 차가 영국 왕실에 대한 복종의 느낌을 주게 되어서 커피의 인기가 더 좋아졌다. 커피집들이 속속 생겨났는데 사람들은 1페니만 내면 입장할 수 있는 커피집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커피집을 '페니 유니버시티'라고 부르기도 했다.
1793년에 월스트리트 82번지 워터스트리트와 교차 지점에서 톤틴커피하우스(Tontine Coffee House)가 개점했다. 톤틴은 증권중개인들의 미팅 장소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톤틴'은 연금보험과 유사한 금융상품의 명칭이다. 가입자의 장수위험을 헤징하는 상품이다. 18, 19세기에 특히 많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커피집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톤틴이 아직 꽤 활발하게 판매된다.
톤틴커피집에서는 온갖 종류의 상인들이 다 모여서 온갖 종류의 거래를 협상하고 체결했다. 정치 모임도 있었고 도박판도 벌어졌는데 클럽과 회의실을 겸한 장소였다고 한다. 최신 정치, 사회, 경제 뉴스가 공유되는 활기로 가득찬 곳이었음은 물론이다. 발디딜 틈 없는 인기 좋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프랑스혁명 후에는 영국과 프랑스 지지자들간 주먹싸움이 종종 벌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영국의 토리당파와 위그당파가 거기서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톤틴커피집은 1817년까지 지속되었다.
1846년에는 맨해튼에 4층짜리 대형 빌딩 브라운커피집이 개점했다. 펄스트리트 71번지다. 예전의 골드만삭스 본부 빌딩이 서 있는 자리에 들어섰다. 커피집뿐 아니라 일반 레스토랑과 바의 역할도 같이 했다. 1900년대 초까지 영업을 했던 것 같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이제 바로 그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고 푸에르토리코계 체인인 '787 Coffee' 카페도 있다.
톤틴커피집이 문을 열기 1년 전인 1792년에 월스트리트에 서 있던 버튼우드 나무 밑에서 24인의 주식중개인이 버튼우드협약에 서명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창립 문서다. 월스트리트 63번지에 있는 한 집 앞에 서 있던 양버즘나무(Buttonwood Tree) 바로 밑에서 협약을 체결한다. 이 협약의 이름은 나무의 이름을 따라 버튼우드협약으로 역사에 남았지만 이 나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의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앞에는 엉뚱하게도 나무가 딱 한 그루 심어져 있는데 다들 무심코 지나친다. 바로 양버즘나무다. 역사적인 제스처다.
그 후 월스트리트의 주식중개인들은 톤틴에 모여서 거래도 하고 증권거래에 필요한 제도도 논의해 오늘날 뉴욕증권거래소의 전신인 New York Stock and Exchange Board를 출범시켰다. 즉, 톤틴커피하우스는 뉴욕증권거래소의 전신이다. 거래소는 몇 군데 이전을 거쳐서 1865년에 지금의 위치에 정착했다.
톤틴커피하우스는 1826년에 선술집으로 업종을 바꾸었다가 1832년에는 호텔이 되었다. 1835년의 대화재 때는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1855년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톤틴커피하우스가 들어섰다가 50년 후인 1905년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월스트리트 88번지에 5성급 월스트리트호텔이 들어서 있고 그 15층에 톤틴이라는 이름을 단 바가 하나 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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