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제 시작이니까요.”
탄핵 집회의 주인공이 된 ‘응원봉’과 ‘응원봉을 든 2030여성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2030 여성들에게 집회 참여 소감과 참여 계획, 다짐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3일 오후 현재 128명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독자들은 “그동안 일궈 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름다웠다”,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를 부정하며 탄생한 정부의 종말을 목격하고 싶다” 등 많은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중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탄핵 집회의 주인공이 된 ‘응원봉’과 ‘응원봉을 든 2030여성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2030 여성들에게 집회 참여 소감과 참여 계획, 다짐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3일 오후 현재 128명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독자들은 “그동안 일궈 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름다웠다”,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를 부정하며 탄생한 정부의 종말을 목격하고 싶다” 등 많은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중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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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미 “그래서 저는 국회 앞으로 나섰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상경한 지 4년 된 서울시민이고, 아이돌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이 많은 30대 여성입니다. 트라우마의 순간은 잊히지 않고 또렷하게 남아 마치 방금의 일처럼 느낄 수 있다고 하던가요? 이 말은 세월호를 말할 때 흘러나오는 얘기입니다. 저 또한 세월호의 그 날, 기사를 보던 순간에 먹었던 음식, 그날 햇빛의 따사로움,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 같은 것들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런 순간은 또 있었습니다. 이태원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를 저는 분명하게 떠올립니다. 얼마 전의 계엄령 선포도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평생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을 순간일 것입니다. 계엄이 선포되고 한동안은 현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꿈을 꾸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늘 평소와 같던 일상의 중간이어서 더 그랬습니다. 속보를 한참이나 확인하고도 현실감보다는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기분이었습니다. 급하게 티비를 켰고, 실시간으로 중계를 보아도 그랬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삽시간에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무섭다’ 였습니다. 감정이라기보다는 생각에 가까웠습니다. 현실감이 덜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서웠습니다. 트위터의 친구들도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더욱 무서워졌습니다. 나의 이야기, 나의 자유로운 이야기, 여성이고 소수자인 나의 이야기들이 나를 불온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졌습니다. 아마 윤석열 정부에서는 ‘선량한 시민’이 아닐 나와 내 친구들이 어떻게 미래를 견뎌낼까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당장 집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라도 악 질러야하는게 아닐까? 손이 차갑게 식고 땀이 흥건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국회로 나섰다는 건 조금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불을 모두 끄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로 들리는 덜덜덜 헬기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헬기 소리가 하나하나 들릴 때마다 제발 저 헬기가 그대로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길 빌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침대 속에서 비는 동안 많은 사람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경찰과 군대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게 감사했고 동시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분들이 무섭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분들은 무서웠기에 국회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아마 그 정도로는 무섭지 않았나 봅니다. 나의 살길, 나의 안전할 길을 궁리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 정도로 무섭지도 않은데 벌벌 떨기부터 한 스스로가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 앞으로 나섰습니다. 저는 여태 2회(금요일과 토요일)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응원봉이 많다는 것,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았습니다. 저도 트위터를 2015년부터 해왔고, 오랫동안 많은 또래의 아이돌 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우리는 정치 얘기를 늘 해왔습니다. 저는 박근혜 탄핵 시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응원봉은 그때도 등장했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로 불리는 기점 이후로 트위터에서 아이돌 팬이던 사람들은 우리의 일상, 덕질까지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살펴보자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들은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하고, 어떤 행동들은 과했거나 부족했다는 평을 받았던 그 당시의 움직임들은 박근혜 시위 때의 ‘응원봉’을 든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응원봉 시위 참여를 큰 흐름으로 만드는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응원봉을 놀랍게 여기는 지금의 시선이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트위터의 아이돌 팬들은 페미니즘을 일상으로 가져와서 덕질까지도 살펴보자는 큰 흐름이 지나고, 인터넷의 페미니즘이 지금처럼 온라인상에서 대중화되면서 정치를 얘기하는 데에도 훨씬 유해지고 적극적으로 되었으니까요.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의 일정을 따라 함께 모였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볼 기회도 훨씬 많고, 아이돌이라는 취미를 구심점으로 굉장히 친해집니다. 그리고 트위터에서는 오히려 일상보다 정치 얘기를 접할 기회가 더 많고요. 따라서 온라인상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정치적 의견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나오는 일은 전혀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제 친구들은 급한 마음에 나 홀로 행동을 한 저와 다르게 다 같이 모여서 시위에 참여했더라고요. 오늘 아이돌 인형이 배송 오는데, 도착하면 다음 시위는 저도 친구들과 같이 모여서 인형을 들고 갈 것 같습니다.
플랫 입주자들이 보내준 ‘탄핵 집회’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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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유는 당연히 국민들의 대표해야 할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해치고 헌법을 유린하고 있는 현 사태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추위에 맞서며 탄핵을 외치는 모습은 가히 절경이었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가 한 데 묶여있다는 소속감과 안도감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같은 또래 여성들이 주변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든든하고 마음이 푼푼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도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K-POP의 소비자로서 음악을 향유하고 음악 산업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해 온 소비자로서도, 더불어 남성과 동등한 시민(또는 가족, 동료 등)으로서도 결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이삼십대 여성들이, 탄핵 집회에 나서면서 주변으로부터 다른 목소리, 예컨대 칭송이나 감격의 후기들을 듣고 있다는 것이 잠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응원봉의 등장이 민주화 운동의 세대교체 또는 세대 통합과 같아 보여 감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허나 돌이켜 보면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지금껏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 옳지 않거나 가치 있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 무시당해왔던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삼십대 여성인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향해 사랑을 외쳤고, 우리의 존재가 지워질 법하면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손을 번쩍 들었고, 외롭고 힘든 누군가가 있을 때는 응원봉의 불빛을 켜듯 주변을 밝혀 보려 애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매번 응원봉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런 우리를 몰라주고 깔보고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이, 당신들과 같은 편에 서서 힘을 보탠다고, 응원봉을 들었다고 이제야 우리의 존재가 유의미한 것처럼 칭찬하는 것이라면 좀 씁쓸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감격과 감동은 어쩌면 지난날 우리의 존재를 낮춰 보고 있었다는 방증은 아니었을지 모르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빙 “헌법을 유린하는 사태를 볼 수 없었다”
대학에서 헌법학개론을 배운 적이 있어요.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헌법의 행간에서 뜻밖에도 국민을 향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살아오는 내내 민주주의의 평화 속에서 피로 쓰인 역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내가 사랑하는 나라와 이 체제, 나를 사랑하는 헌법을 유린하는 사태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12월 7일, 국회 앞으로 달려갔어요. 현장에서는 좌절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패배의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이제 시작이니까. 사태가 터진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광장에 모인 시민이 백만 명이고, 시대정신이 같은 젊은 여자들이 모여있으니까 한국의 미래는 아직 젊으며 곧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국회 현장에서 마주한 면면의 젊은 여성 동지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고향인 대전으로 돌아와서는 12월 8일 대전역에서 진행하는 집회에 나갔습니다. 서울에 모인 백만 명만큼이나 열정적이고, 여전히 젊은 목소리들 사이에서 속해있는 게 행복했어요. 그러나 집회 주최자가 성범죄 2차 가해자고, 집회 참여 가수가 여혐 가사를 쓴 사람이라는 걸 시위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고 절망했습니다. 7일 서울 집회에서도 페미니스트 운동가분이 자유발언 하시러 무대에 올라왔을 때 주위의 반응이 냉담했던 것까지 떠올랐습니다. 여기에도 내가 원하는 미래가 없구나, 여자는 여기서 또 지워지는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계엄령 상황을 TV로 지켜본 그 155분, 그리고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 느꼈던 것보다 더 극심한 공포와 절망을 느꼈습니다. 서브컬쳐에서 퍼져나가는 (말도 안 되는) 손가락 논란에 정치권, 노동권 아무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 인터넷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여성 범죄, 지지부진한 딥페이크 조사, 일상이 되어버린 화장실 몰카(불법촬영),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 여자란 이유로 겪어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계엄령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할 거란 공포였어요. 혼란스러웠고, 그럼에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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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원 “촛불집회는 제게 참여해야 마땅한 것”
안녕하세요. 저는 윤석열 탄핵 시위를 참여한 지 1년 이상이 되어가는 사람입니다. 처음 시위 참여 의사를 다짐하게 된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고자 함이었습니다. 평소 친일 잔재 청산, 약자·소수자 인권연대, 환경·동물보호에 관심이 있던 터라 제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찌르는 오염수 방류만큼은 꼭 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처럼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서명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고 다가올 비관적인 미래, 죽어갈 생명이 떠올라 죄책감에 시달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와중에 “네가 독립운동가니?” “방류되어도 안 죽어.” “나라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야.” 등의 무심한 반응을 마주하니, 이대론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분명 갈 곳 없는 분노와 서러움, 나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객기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시위에 참여하니 기대에 없던 많은 위로를 받게 되더군요. 나만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생각한 정의는 틀리지 않았다는걸... 그러니 저에게 촛불집회는 참여해야 마땅한 것. 기회이자 다시 시작입니다. 더는 사람 죽어가는 소식을 접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는 피해자들의 설움을 외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촛불집회에는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약자·소수자·노동자 시민들이 각자의 결의를 하고 골이 울리게 저항합니다. 증인으로서 이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정의를 지키려 합니다. 그렇기에 촛불을 든 저는,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더는 느끼지 않습니다. 불의를 참지 않는 이들이 함께하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유실론 “우리는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알려줘야 합니다”
12/3(화) 그날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혼란한 가운데 저는 집에 있었고, 불안한 마음에 결국 모든 소식을 차단한 채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졌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자꾸만 불안하고 두려워 결국 허겁지겁 시청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시간가량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달려 나가면서 이제서야 시청으로 향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두렵고 부끄러운데도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새벽바람을 맞으며 시청 앞에 서 있어서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지고, 시민들의 외침은 분노에 차 있었습니다. 추위와 고성 속에서 불현듯 생각했습니다. 실상 정말로 부끄러워 마땅한 이들은 누구인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는 잠들어야 하는 때를 놓치고 뉴스를 보는 바람에 시청 앞으로 오지 못한 이들이 아니라, 너무 멀어 군경을 제지하러 올 수 없었던 이들이 아니라, 두려움에 친인척이 달려 나가는 것을 말린 사람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달려 나오게 만든, 두려움에도 맞서게 만든, 역사를 되풀이하게 만든 이와 그에게 동조한 이들이 아닌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 부끄러움이 돌아가야 옳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내란수괴와 그 부역자들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르고, 우리는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려 줄 수 없다면 마땅히 부끄러워질 자리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청 앞 집회에 집결한 시민들을 보며, 그들과 연대하며, 소리 지르며 결국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영 “이렇게 오랜 시간 쌓아온 기억의 공유가 바로 공동체의식”
머릿수로 세를 확실히, 그리고 시급히 보여야만 하는 사안이라 여겨져 나갔습니다. 저는 최루탄 맞는 거리집회 경험을 한 마지막 학번이자, 서태지와 H.O.T의 시대로부터 빌보드 차트에 당연하게 자리한 K팝까지 같이해온 관록의 빠순이입니다. 집회에 울려 퍼지는 민가와 K팝의 가사를 거의 모두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녹아있는 세월만 해도 대략 30년입니다. 노래는 살아온 시간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집회에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는 그 모든 노래에는, 각자 다른 색깔로 수없이 빛나는 응원봉 색깔만큼이나 각자가 살아온 삶과 추억이 얽혀 있습니다. 그 사실이, 수십만 개 응원봉의 스펙터클로 눈앞에 시각적으로 현현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이 쌓아온 기억의 공유가 바로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그걸, 완전히 사적인 야욕으로 짓밟으려는 게 이번 내란의 수괴였고 국회에 틀어 앉은 채 외면하고 있는 한 줌의 무리였습니다.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나 사람이 많았기에 더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겨졌습니다. 함성의 피치는 제가 콘서트장에서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얘깁니다. 비주얼 면에서 너무나 압도적인 스펙터클이었기에 다들 응원봉의 얘길 하는 걸 보며, 언제나 집회에 존재해왔던 여성들의 존재감이 예전 같은 일회성 소비의 한도를 넘은, 의식적 인지의 영역 안으로 이젠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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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따샤 “2030 여성을 신기하게 보지만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강남역 살인사건의,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강남역 살인사건의,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계엄령 발표 직전까지, 저는 트친이 보내준 굿즈 박스를 행복한 마음으로 뜯고 있던 오타쿠였습니다. 하지만 계엄령이 발표되고 나서 제 덕생과 일상이 무너졌어요..... 저는 해외로 원정을 다니는 오타쿠라서, 출국 금지 당할 수 있다는 우려+외화 폭등에 밤중에 육성으로 욕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전남 진도 출신이라, 계엄령 선포에 5·18과 세월호가 오버랩되기도 했고요..... 빨리 저의 안전한 일상과 행복한 덕생을 되찾기 위해 탄핵 표결 날 국회로 나섰습니다. 오타쿠라고 해서 정치와 분리된 존재들은 아니에요. 언론에서 응원봉 들고나오는 2030여성을 신기하듯 보지만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강남역 살인사건의,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대다수 여성들은 노동자일 것이고요. 대한민국 여성이야말로 정치에 참여해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존재입니다. 저만 해도 법적 지정 성별은 여성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피메일바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고 있기도 해서 고 변희수 하사의 추모 행동에 종종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집회에 참여했는데 그냥 퀴퍼 때 보던 사람들 다 모였더라고요. 저는 오타쿠 깃발 만들어 갔는데 원정 공연 때 뵈었던 동지분을 만나서 기쁘고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여성들, 퀴어동지들을 광장에서 만나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반드시 민주주의 쟁취하고 행복한 퀴어로 늙어서 이 광경을 증언하고 싶어요.
양지수 “여성혐오 정부가 실패한 지금
우리는 약자를 짓밟는 권력자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걸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자를 짓밟는 권력자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걸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습니다. 이대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 어머니, 언니, 사촌 자매들,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참여했습니다. 참여한 후에는 조금 씁쓸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른 다양한 발언자들의 연설에는 호응하다가도 페미니스트의 연설에는 내려와라, 등등 야유를 참지 못하고 내뱉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분의 생각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스트의 의견에 특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기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불쾌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하나로 뭉칠 시간이지만 이런 광경을 보면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표심을 얻은 방법의 하나는 분명 여성 혐오였고, 그 정부가 실패한 지금 우리는 대선 당시 윤 씨의 여성 혐오 공약과 발언에 대해 비판적으로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현 시국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약자를 짓밟는 권력자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겐 자신 또한 약자일 뿐이라는 것을요.
권 “민주주의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여성, 장애인, 퀴어, 소수자는
더 척박한 환경에서 소리를 내야 할 것”
여성, 장애인, 퀴어, 소수자는
더 척박한 환경에서 소리를 내야 할 것”
5월생의 고3은 4월 대선 때 투표권이 없어 다음날 학교를 가야함에도 새벽 4시까지 대선 결과를 지켜보았다. 결과는 윤석열 당선이었고 당선이 되자마자 여성가족부의 존속을 위협했다. 결국엔 현재까지 여가부 장관이 공석이다. 이태원 참사는 아직까지 그곳에 놀러 간 청년들의 탓이고 세월호의 진상규명은 흐지부지되며 세월호 봉안당의 설치를 두고 반대 단식 투쟁 등을 하며 유가족을 괴롭게 한다. 남초 사이트 발 ‘집게손가락’ 검열은 어떤 노동자의 직업을 포기하게 했고 여러 기업은 얼토당토아니한 검열에 대해 즉각적인 수정으로 그들에게 소위 나댈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 그러나 여성은 3일에 1번씩 사망자로 나오는 지금은 딥페이크, 네이버 웹툰 불매운동, 동덕 및 성신여대의 공학 반대 시위는 언론과 정계의 즉각적인 반응은 고사하고 성별 갈라치기라며 욕을 먹는다. 우리는 지키는 일조차 욕을 먹는다. 이렇게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페미니즘은 욕을 먹으며 검열당하고 제외된다. 민주주의가 없는 대한민국에게 페미니즘과 장애인, 퀴어, 소수자와 약자는 더 척박한 환경에서 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또 죽을 것이고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그렇기에 난 국가에 검열당하지 않고 사회에게 검열당하지 않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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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빈 “여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참여 전, 돌아오는 주말 참여 예정) K-팝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오는 모습에 정말 용기를 얻었고 얼른 집회 현장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공방 참여로 KBS 주변 지리는 꿰고 있다는 여성 팬들, 사전녹화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추운 거리에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다는 여성 팬들, 여당 국회의원들이 특정 단어가 들어간 문자는 걸러내는 앱을 사용한다니까 검색에 안 걸리는 단어 만드는 건 오타쿠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는 여성 팬들, 인신공격에도 타격 없는 집단이라 말하는 여성 팬들을 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살아간다는 일이, 특히 여성으로서 ‘팬질’을 하는 일이 어쩌면 끝없는 투쟁의 길을 걸어왔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팬 사인회 들어가기 위해 몸수색을 받고, 매크로 사이에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증명서를 떼가고,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해주는 팬들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소비자의 권리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이에서 여성들은 강해졌다. 그렇게 전사로 키워졌다. 불의에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배워왔던 여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시는 어린 여성들을 무시하지 말길. 매 순간 존재를 증명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길 바란다.
롯데자이언츠우승 “살고 싶어서 토요일 집회에 나갔어요”
나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여의도와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데요. 12월 3일 밤 계염령 소식을 듣고, 헬기 소리가 들리는데 국회에 가지 않았어요. 마음은 이때 가서 국회를 지켜야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계속 이야기하더라고요.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하던데.. 머리는 도저히 그걸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만약 저걸 막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부터,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다 위험해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계속 뉴스만 보면서 괴로워했어요. 마음을 따르지 않은 대가는 컸습니다. 다음날 몸살에 걸려서 집 밖을 나가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목소리도 안 나오고 근육통과 두통.. 이게 저를 자꾸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살고 싶어서 토요일 집회에 나갔어요. 이 또한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확실히 가서 마음껏 연대하고 오니까 괜찮아졌습니다. 나만 이 상황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확인하고요. 그리고 형형색색의 무지개 깃발도 보니 안심도 됐습니다. 이전 탄핵 집회와 달리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는 게 아니라, 혐오 발언을 하지 않게 막아줄 이들이 나를 지켜준다 생각했으니까요.
서영 “‘한국인들은 정이 많다’는데,
‘정’은 ‘한에 대한 공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정’은 ‘한에 대한 공감’서 나오는 것 아닐까”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았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를 망치고 있는 자격 없는 지도자를, 민주주의 국가의 한 시민으로서 두고 볼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고 살면서 처음으로 나가본 집회였는데 마음이 참 이상했다. 분노를 쏟아낼 작정으로 나갔었지만 의외로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특히 젊은 층의 여성분들 그리고 청소년분들이 제법 보여서 한국 정치에 대한 어떤 작은 희망을 느꼈던 것 같다. 다들 평소엔 정치에 무관심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나서는구나, 싶었다.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회 현장에서 서로 핫팩이나 led촛불, 간식 등을 나눈다거나 하는 등 챙겨주는 모습에서 문득 ‘한국인들은 정이 많다’는 얘기에서 ‘정’은 ‘한에 대한 공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따뜻하고 동시에 슬펐다.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는 순간이 아닌 평소에도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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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2 “서로의 불빛이 되는 게 멋졌다”
내 손엔...비싸게 주고 산...바람에 꺼지지 않는 빛나는 도구가 있었고, 나라 꼴을 보니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응원봉 들고 나와서 튀는 행동 아닐까? 콘서트장이냐고 뭐라고 할까(헬조선 생활 3n년차 자기검열 max)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 응원봉을 보시고 이거 어디서 사냐, 너무 좋다 물어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보면서..귀엽기도 했고, 다른 팬덤들의 수많은 응원봉을 보니, 2030 여성들 갑자기 멋있고 막....든든하고 막.... 외롭지 않고....서로의 불빛이 되는 게 멋졌다. NCT 응원봉이 네모난 이유가, 도시의 꺼지지 않는 창문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 그런 건데... 어두운 밤 국회 앞에서 이 불빛들을 보니 그 의미가 다시 생각났음. 탄핵당할 때까지 절대 우리는 꺼지지 않아!!! 농담으로, 최애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지만, 막상 시위를 나와보니까, 소중한 응원봉 품에 안고 뛰쳐나온 여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졌다. (우리가 잘 살면 최애도 잘 살겠지)
지니 “탄핵 시위의 주축인 여성을 비난하고 차별하는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 거라 기대하며”
박근혜 탄핵 당시 참여하지 못했던 게 걸려서..그리고 비상계엄에 너무 충격을 받아 얼른 집회에 나가서 윤석열 탄핵에 목소리를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7 국회 앞 집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는데, 서로 질서를 잘 지키면서 동시에 엄숙하고 한편으론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 집회문화가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단상에서 발언하자 싸늘한 침묵과 야유를 보이는 시민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어요. 저는 철도노조나 금속노조원분들이 발언할 때와 마찬가지로 “맞습니다!”를 크게 외쳤지만 제 주변에선 저 말고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혼자 간 것도 아니었는데... 아 그리고 혹시라도 성범죄 유죄판결을 받은 김민웅씨가 단상에 오르는 일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탄핵 시위의 주축인 여성을 비난하고 차별하는 목소리가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점차 줄어갈 것이라고 기대하며, 탄핵 및 국민의힘 당 해체, 그리고 내란 주도 세력들을 끌어내릴 때까지 여성으로써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다이안 “이번 집회에 참여하며 올바른 어른의 모습으로 한 발 나아갔다 느꼈다”
‘계엄’이라는 단어를 영화나 책이 아닌 현실에서 본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의 내 일상이 파괴되고 자유와 인권이 사라질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 엄청난 공포감이었어요. 그리고 조카 둘의 이모가 되고 나니,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과 떳떳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항상 생각을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 참여하면서 올바른 어른의 모습을 갖춰가는 데 한 발 나아갔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번 집회에서 10대부터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함께 목소리 내는 것이 좋았습니다. 여자들이 누구 보다 앞장서서 민주주의를 지키러 나왔다는 것에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인과 언론은 응원봉에 집중하며 여성들을 배경으로 취급하고 국회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한 모습을 지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변화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유의미 “더 오래 버틸 수 있겠다, 계속 할 수 있겠다는 희망”
도저히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을 순 없었습니다. 또, 개인으로는 1명이지만 꼭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회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지난 평일, 집회 분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 접했던 상황이라 무섭거나 두려운 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함께하고 와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집회를 참여하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여러 깃발이 있었지만 저는 fsdc 깃발 아래에서 어느 정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깃발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주변 여러 여성분들이 핫팩이나 간식을 서로 챙겨주고 친구와 장갑을 나눠 끼며 구호를 외치는 등 감동적인 순간들을 보면서 더 오래 버틸 수 있겠다, 계속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지난 주말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또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플랫 입주자들이 보내준 ‘탄핵 집회’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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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비겁하지 않았고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던 새벽, 국회를 또 공격할지도 모른다며 국회 주변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4,5,6문의 경우 뒤쪽이라 사람도 적고 강바람까지 맞는 곳이었죠. 거길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젊은 여성들이라는 소식까지요. 밤새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산동에서 나고 자랐고 국회의 파란 돔을 지금도 보면서 일하거든요. 토요일에 근무가 있어서 표결에 불참하는 모습은 뉴스로 봤습니다. 더는 못 참겠더군요. 퇴근하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나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추위에 떨며 그곳을 지키고 있는 분들께 작은 보탬이 안되면 평생을 죄책감을 느낄 거 같았거든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죄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그자들은 최소한의 죄책감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뒤늦게라도 그곳에 함께 서 있을 때, 조금이나마 저는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비겁하지 않았고,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워맨스 “그동안 일궈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말도 안 되고 절차도 없고 근거도 없고 다짜고짜 계엄령 선포하길래 내가 아는 계엄령이 맞나 싶었어요. 너무 어이가 없었고 나라 걱정도 되면서 나라 떠야 하나 싶었어요. 나라가 바뀌었으면 해서 집회에 나갔어요. 저는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나 콘텐츠, 사계절과 역사를 좋아합니다.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분노가 있나 봐요. 애정도 없었다면 분노도 없었겠죠. 제발 우리의 목소리가 닿길 바랬어요. 그동안 일구어 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참여했을 때는 제 나이 때 여성분들이 많더라고요. 아 다 같이 한뜻으로 나왔구나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곳으로 나왔구나 연대감을 느꼈어요. 좌절하더라도 회의감이 들더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느꼈어요. 목이 튼튼한 편인데도 노래방에서도 2시간 하면 목쉬는데 집회에서는 간절해서 그런지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소리 지를 수 있더라고요. 세상이 더 평등과 민주와 자유를 그리고 청렴한 세상이길 바랍니다.
익명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만큼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
2016년 촛불시위 땐 수험생이어서 참여하지 못했었는데, 그때 대한 죄책감과 부채 의식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도 성장한 데다가 10년 넘게 케이팝을 사랑하는 20대 여성으로서 저번 주에 유난히 돋보였던 응원봉 물결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한 당장 힘을 보태지 않으면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만큼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위에 참여해 그 어느 때보다 응원봉을 세게 흔들었고, 팔이 아프고 손이 얼어붙더라도 멈추지 않고 흔드는 행위를 볼 누군가가 저처럼 힘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벅찬 주말을 보내고 보니, 연쇄적으로 발생한 연대의 증거가 고스란히 역사와 미디어에 남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네옆에시민 “그때그때 손에 든 건 다르지만
이번에는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자유가 보장된,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나아갈 수 있는 민주 시민으로 살고 싶어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가 처음이 아닌, 10대, 20대, 지금 30대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시위의 참여자로 목소리를 내왔고, 이번이라고 다를 건 없기에 또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때그때 손에 든 건 다르지만, 이번에는 건전지만 넉넉하다면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들고나왔어요. 박근혜 탄핵 시위처럼 우리는 목소리 높여 외쳤고, 그때처럼 즐겁게 시위하며, 좌절되는 순간마다 분노하지만 다음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박근혜 탄핵 당시 붉어졌던 여성, 그리고 소수자 혐오 문제 등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사태를 보면서 무력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여전히 퇴근하고 시위 장소로 향하지만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4.12.7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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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일주일간 쌓인 분노를 시위하며 쏟아냈다”
부끄럽지만 정치에 관심을 두는 삶은 아니었어요. 생에 처음 계엄 선포라는 것을 뉴스에서 보았는데 순간 현실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유튜브 라이브로 무장 군인들과 맞서는 시민들을 보며 감사하는 한편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 지난주 토요일 시위에 다녀왔습니다. 약 일주일간 쌓이고 쌓인 분노를 시위하며 쏟아냈습니다. 비록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자들로 인해 가결되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번 주 토요일에도 엄마와 함께 시위에 나갈 예정입니다. 응원봉들이 부러워서 경광봉 주문했어요.ㅎㅎ 첫 시위라 국회 앞에 막 도착했을 때는 쑥스러워 조그만 목소리로 탄핵하라~ 이랬어요. ㅋㅋ 근데 주변 여성들의 큰 목소리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중에는 선창하기도 했습니다.
김윤서 “공기처럼 당연했던 민주주의가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20대 중반인 제게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가 한 번도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공포를 느낀 이상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촛불집회 때는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참여하지 못했기에, 시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고, 그들이 모두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다는 사실을 접한 뒤 두려움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참여한 뒤에는 생각보다 정말 젊은 여성들이 많아서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이런 현상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비봉 “‘임을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
두 곡 빼고는 다 불렀어요”
두 곡 빼고는 다 불렀어요”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갔어요. 가보니 화도 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즐거운 순간도 있고 위안이 되는 순간도 있었어요. 30대이면서 노래하기&듣기를 좋아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 두 곡 빼고는 다 불렀어요. 공교롭게도 제 양쪽 모두 엄청 큰 목소리로 노래를 하시는 여성분이 계셨는데요, 제 왼쪽의 10~20대로 보이는 분은 최근 아이돌 노래는 애드리브와 코러스까지 부르시는데 2000년대 노래를 못 부르시고, 제 오른쪽의 40~50대로 보이는 분은 제가 못 부른 두 곡만 크게 부르셨어요. 다양한 세대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시위를 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마음으로 욌겠구나 싶었어요.
박진솔 “갈 때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누리는 평화, 자유가 아무런 대가 없이 얻어낸 것이 아닌, 많은 사람의 피 위에 흘려진 것인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노력이 고작 저런 인간에게 휘둘리게 된다는 것도 싫었고요. 참여할 때는 너무 무서운 마음뿐이었는데 가서 많은 사람을 보니까 위로가 되었어요. 국회의사당 앞에 가는 지하철이나 가는 길마다 사람이 많아서 저 혼자 이런 불의에 화가 나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난 7일 투표는 무산됐지만 그래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갈 때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매주 나갈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던 한 시민이 우원식 국회의장이 투표 종료를 선언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12.7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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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험이 뭐 별건가요. 재수강하면 되고 좀더 열심히 하면 되죠”
저는 시험 기간 대학생입니다... 저도 21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보다 어린 소녀들이 추운 겨울날 다른 것도 아닌 나라를 위해 연대한다는데 시험이 뭐 별건가요. 재수강하면 되고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나만 집에서 편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저는 12월 9일 시위에 참여했고 남자들도 있었지만 여성의 수가 훨씬 많았으며 어린 10대와 2030 여성이 제일 많았습니다. 제일 목소리도 컸고요. 추운 날 늦은 시각 여자들이 목이 쉬어라 외치는데 울컥했던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WENEE “우리가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늘 정치 문제에 관심은 많았지만 겁이 많은 성격이라 현장에 나가 시위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응원봉연대가 보였고, 뜻을 같이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 같은 사람들도 집회에 나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나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말 집회에 다녀온 후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외치는 수많은 케이팝 팬들, 촛불을 든 제 또래의 여성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보고 연대감을 느꼈고 우리가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은서 “끊임없이 소수자를 지웠던 것을 기억한다”
위헌적인 계엄선언과 이를 방치하는 여당에 분노해 나갔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응원봉과 저와 같은 여성, 소수자를 보고 이건 단순한 탄핵 집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박근혜 탄핵 때 수많은 혐오 표현들과 여야불문 계속된 성폭력 사건 고발이 이어진 기억이 납니다. 또 민주당 정권에서 끊임없이 소수자를 지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페미라는 이름이 욕이 되고 여성혐오범죄가 막연한 사회를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내란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임슬아(두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게 아름다웠다”
조금이라도 나의 마음을 보태고 싶었고, 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집회를 하는데 언론은 너무 서울만 주목하고 서울에서 하는 집회만 집중하는 꼴이 너무 싫어서 일부러 더 지역의 집회에 가서 머릿수를 채우고 싶었다. 참여하니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고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인 덕질하는 것들을 들고 와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었다.
김예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추운지도 몰랐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걸 듣고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나은 나라를 위해서 나왔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나온 시위 현장은 나라 정세와 정반대로 너무 따뜻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에서는 추운지도 몰랐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온몸이 떨리더라고요.. 따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몸소 느꼈네요!
플랫 입주자들이 보내준 ‘탄핵 집회’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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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쳄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는 자리였다”
계엄령 직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같은 해에 읽어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참여 후에는 충격과 고통을 속으로만 참아 왔던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서 전 국민이 외상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집회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는 자리였습니다.
유스티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와닿았고 큰 용기가 됐다”
피와 목숨으로 지킨 민주주의에 쉽게, 편하게 편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회에 참여하며 김건희 특검이 부결되고 여당의 불참으로 탄핵안이 폐기되어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허나, 집회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외치는 여성들의 연설에 저를 포함한 많은 2030 여성들이 함께 환호하고 대답하는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직접 와닿았고 이는 정말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워냐 “이대로 죽을 수 없지 라는 정신으로 힘낼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소리를 더하러 나갔습니다. 사실 7일 저녁 부결된 뉴스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탄식과 절망이 스쳐 지나갔지만 함께 있던 수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대로 죽을 수 없지 라는 정신으로 힘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생에 계엄이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그러나 탄핵이 끝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탄핵이 끝이 돼서는 안 된다”
엥 “여성혐오로 당선된 윤석열이 합당하지 않은 사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표결을 막기 위해 국회 폐쇄 시도를 하는 등의 위헌 행위로 인해 참여했었습니다. 정말 나이 불문하고 여성이 많았습니다만, 여성들의 참여를 지우고 ‘청년들’, ‘MZ들’이라 표현하는 다수의 기사들에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콩새 “무서워서 참여했어요. 안 그래도 사는 게 우울한데 이러다 진짜 죽을까봐 무서워서 참여했어요. 집회에서 자유 발언 들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참 많이 제대로 잘 살고 싶어하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은비 “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여성들이 드디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기쁘고 벅찼다. 시위현장 한가운데에서도 안전하다는 기분과 동지의식이 강하게들어서 위로가 되는 기분도 들었음.”
멜구리 “저는 2016년에도 집회에 나갔었습니다. 매주 버스를 타고요. 부끄럽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가고 싶고, 지켜낸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망고양 “내 생에 계엄이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이수영 “가고 싶었으나 못가던 차에 친구들이 같이 가자는 말이 큰 힘이 됐음. 국민의힘 당론이 탄핵 부결로 굳혀진 이후, 시민 참여가 변화를 향한 관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촛불집회만 참여했던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안(무엇이 정치적 사안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에 대해서는 꾸준히 귀 기울여왔음. 이태원 1주기, 세월호 10주기, 딥페이크 처벌,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등... 꾸준한 시위 참여까지는 아니어도 이전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한 게시물 공유, 청원 참여 등 소극적 참여는 이어왔음. 특히 이번 윤석열 탄핵 시위의 경우, 주변 또래에서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까지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일 만큼 참여 허들이 낮아짐을 느낌. 많이 참여하니 더욱 동참하게 되는 선순환도 있지만 비상계엄이라는 사안 자체가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민주주의에 정반대되는, 정말 충격적인 행보였기에 그런 것으로 추측됨. 여전히 시위를 통해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조금의 회의감은 남아있음. 그럼에도 나, 내 주변 친구들, 나와 비슷한 인구학적 섹터의 사람들, 또는 다르더라도 같은 의제로 뭉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지점에 대해 기쁘다고 느낌. 그러나 탄핵이 끝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정치적인 액션이 일상화될 좋은 기회기에 정치권과 미디어를 비롯해 다양한 주체들이 어떠한 미래를 그려나갈지에 대해 목소리 내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함. 이전까지 시위보다 20대 여성 비율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라 느낌. 굳이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친구들과 왜 이렇게 여자 목소리만 들리지라고 생각했음. 특히 앞선에 있다가 뒤로 갈수록 탄핵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너무 앳되고 높아서 신기했음.”
플랫 입주자들이 보내준 ‘탄핵 집회’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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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2030 여성들은 분명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여요.
함께 투쟁할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여요.
함께 투쟁할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 “윗세대분들께서 힘들게 이뤄내신 민주주의가 이렇게 끝나면 안 되며, 여성혐오와 약자에 대한 혐오로 이뤄낸 정치를 끌어내리고자 하는 마음에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는 팻말을 들고 알바 끝나자마자 뛰어갔습니다. 알바 끝나자마자 참여한 거라 준비도 미흡했고, 사실 많이 힘든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챙겨간 팻말을 보고 초콜릿과 육포를 나누어주시며 말을 걸어주신 여성분들과 퀴어 깃발을 들고 나오신 분들 덕분에 끝까지 있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투표 결과를 듣고 허무했지만 안 부끄럽냐며 큰 소리로 외쳐주신 여성분들과 시위가 끝나도 지하철에서까지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신 분들 덕에 허무함이 가시고 다시 힘낼 수 있게 됐습니다.”
도경 “저는 대학 내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촛불 집회 전에도 꾸준히 다양한 요구를 하는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의 집회는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엔 너무나도 소규모였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대학생들도 너무 적다는 생각에 걱정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민주주의자가 이렇게 적어서야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자는 투표 외에 다른 정치적 행위를 선택할 수 있고, 내가 주체적으로 사회를 바꿀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이 탈정치화되고 나서는 정치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학생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촛불집회 때 많은 여성들이 광장에 나온 것을 보고 ‘여성들이 스스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직 붙잡고 있구나. 우리는 실망과 좌절에 지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탄핵이 부결되었지만, 그것보다 광장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고, 여성들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촛불집회에 다녀와서 앞으로의 사회를 기대해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2030 여성들이 촛불집회에 많이 참여한 것 외에도,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운동과 밀접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친구들에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친구들은 보통 무관심한 반응을 보입니다. 대학생들이니 그럴 만도 해요. 그런데 이번 집회 때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며 경찰을 밀고 시민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잖아요. 친구가 저에게 먼저 이 영상을 보내면서 민주노총을 칭찬하더라고요. 민주노총과 2030 여성들은 분명 다르지만, 달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여요. 여전히 성평등한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사회가 되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함께 투쟁할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아름 기자 areum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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