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 수련병원에 붙은 전공의 모집 안내문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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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10시 넘어 머리를 다친 취객이 응급실 문을 두드렸고, A씨는 상처 부위를 열심히 꿰매고 있었다. 평범했던 하루가 삽시간에 무너진 것은 A씨가 진료를 마친 직후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현장을 이탈한 의료인들’에게 48시간 내 근무지로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A씨는 지역 2차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사직 전공의이다. 그는 “계엄 선포 당시 나를 바라보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당혹스런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처음엔 정말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대통령이 처단하겠다는데 그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바로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분노가 차올랐다고 했다. A씨는 “내가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밤 늦게까지 환자들 돌보는 것뿐인데 왜 이런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원래 다니던 수련병원까지는 이 병원에서 수십 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이제는 아예 멀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만 해도 의료계 내부에서는 수련 재개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수능도 끝났고 정시 원서 접수도 곧 진행되는데, 지금처럼 의료계가 ‘증원 백지화’만 고집하는 건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수련을 다시 시작하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받아낼 건 받아내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같은 협상론은 꽤 힘을 얻었다고 한다.
작게나마 존재했던 변화의 불씨는 계엄 사태로 완전히 소멸됐다. 사직 전공의 B씨는 “계엄으로 얻은 게 있다면 정부가 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두가 알게 됐다는 점”이라며 “의정대화는 끝났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업적으로 꼽힐 만큼 간절했던 의료개혁이, 포고령에 담아서라도 꼭 매듭지으려 했던 의료개혁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폭력적 욕심 때문에 좌초됐다.
최근 마감된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은 예정된 파국으로 끝났다. 비수도권 수련병원의 경우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곳이 적지 않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그나마 참여해온 의료단체 세 곳이 전부 탈퇴하면서 길을 잃었다.
공중분해된 건 여야의정협의체도 마찬가지다. 출범 초기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겠다던 대국민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불도저식 개혁이 지난 10개월간 남긴 건 폐허가 된 의료현장뿐이다.
심희진 과학기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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