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가공세에 정치리스크까지
8년전 탄핵정국보다 어려운 상황
정부의 규제 완화 지원책 절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중국발 저가공세 속 정치리스크까지 겹치며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는 8년 전 사상 초유의 탄핵 상황 당시보다도 현재 상황이 더욱 극심한 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조만간 발표되는 정부의 지원책에 적극적인 규제 완화 등 내용이 담기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13일 정부에 따르면 이달 중 추가로 열리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선 ‘석유화학 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이 발표된다. 업계에선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정국 불안 여파에 발표가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단 우려도 나왔지만, 산업 위기에 구체적인 지원책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 지원안에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기준을 완화해 석유화학업종에 적용하는 등 규제 완화 및 세제 혜택 방안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기활법은 과잉 공급이나 공급망 위협 등 사유가 있으면 산업부가 기업의 신청을 받아 ▷주식 교환 시 양도소득세·법인세 등 과세 이연 ▷증권 거래세 면제 ▷간이 합병과 소규모 합병 시 주주총회 의결이 아닌 이사회 승인 등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석화업계 구조조정 불가피…공정거래법 한시 완화 여부 등 촉각=나아가 업계에선 국내 기업 간 빅딜을 통한 구조조정을 위해선 공정거래법 독점 규제의 한시 완화 같은 적극적 조처가 불가피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각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업 재편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 간 인수합병(M&A)에 나서거나 사업자 간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 자체 등이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다만 ‘불황 극복을 위한 산업구조조정’ 사유로 공정위 인가를 받으면 공동행위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부처와 관련 규제 완화 등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예외 조처를 위한 일정 요건을 단시간 내 모두 충족하는 게 쉽지 않고, 그간 허용된 사례도 거의 없어 가능성이 크지 않단 전망도 고개를 든다. 무엇보다 정부는 이번 지원안을 본격적인 산업 구조조정에 불붙이는 차원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선 과거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산업 구조조정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며 “기업들의 사업 재편 방향성은 자율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다시 불황 속 탄핵 정국…“2016년과 비교할 수 없는 위기”=이런 가운데 업계에선 ‘일시적 불황’을 위한 단기 처방 수준으로는 상황 타개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현재와 ‘닮은꼴’로 여겨지는 8년 전 상황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기란 설명이다.
2016년 당시 정부는 세계적 저성장과 중국의 급성장이 맞물려 석유화학산업 가격 경쟁력이 위협받자, 그해 9월 말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놨다. 해당 지원안에는 설비 경쟁력 강화 지원, 공급과잉 품목의 자발적 사업재편 유도 등 내용이 담겼다. 특히 기활법을 통해 조세이연, 금융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단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다만 지원책 발표가 무색하게도 석유화학 시장이 곧 전 세계적인 ‘슈퍼 사이클’(초호황) 기간에 진입하며 회복 국면을 맞았다. 이에 당시 탄핵 정국 및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드리워진 불확실성 우려가 다소 걷히고 산업 재편에 대한 논의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현재는 등락을 보이는 사이클 자체가 사라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중국발 공급 과잉을 비롯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업계는 중국의 신증설 물량과 구조적 공급 과잉으로 빠른 실적 반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에틸렌 설비 능력은 지난해 기준 5174만톤(t)으로 한국(1280만t)과의 차이는 4배 이상이다. 여기에 중동 추가 증설까지 겹치며 국내 업계 경쟁력은 더 타격받고 있다. 이에 대내외 정치 리스크에 더욱 취약해진 가운데 계엄·탄핵정국에 따른 불확실성도 더 커진 셈이다.
한 석유화학사 관계자는 “과거와 같이 부침을 겪는 업종으로 생각하며 사이클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국의 대규모 증설을 비롯해 지정학적 리스크, 전쟁 등으로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중국으로 수출을 늘려가기는 어렵다”며 “구조적 호황이 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은결 기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