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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법조스토리]인간 윤석열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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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시절 항명 사태로 좌천·부활

문재인 정부때도 신념따른 선택

이젠 국가·국민 위한 결단 기대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윤석열 대통령을 처음 가까이서 본 건 2013년 10월 21일 늦은 저녁이었다. 아침부터 12시간 넘게 이어진 국정감사를 취재하느라 몹시 지쳐있을 때였다.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사도 폭로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심한 윤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다. 국감 증언대에 선 그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한 일로 직무 배제돼 여주지청장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그날 그는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면전에서 "검사장님 모시고 이 사건을 계속 끌고 나가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라고 했고, 직속상관이었던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수사 총괄책임자가 맞느냐는 질의에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조 지검장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 조직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검찰에서 전례가 없는 하극상이자 항명이었다. 검사 윤석열이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날이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날 나왔다.

부당한 수사 외압을 폭로한 대가는 혹독했다. 검찰 내 엘리트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만 맡을 수 있다는 대검 중수1·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쳤던 그는 이듬해 한직인 대구고검 검사로, 2년 뒤 다시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되며 더 이상 재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랬던 그가 편안한 점퍼 차림으로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서였다. 박영수 특검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정권에 흠을 낸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특검 파견을 고사하던 그를 20명의 파견검사와 검찰·경찰·국세청 파견공무원 40명을 지휘하는 수사팀장에 임명했다.

특검이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고 정권이 바뀐 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검찰로 복귀했다. 사법연수원 선배를 1·3차장검사로 지휘하게 된 기수 파괴, 파격 인사였다. 이후 그는 한동훈 등 자신의 측근 검사들을 요직에 중용하며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보다도 실세라는 소리를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 속에 결국 그는 무려 4기수를 뛰어넘어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그런 그가 다시 곤경에 빠진 건 문 대통령이 아끼던, 자신의 직속상관이 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수사하면서였다. 그는 "꼭 수사해야 되겠냐"는 문 대통령의 만류에도 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린 날 저녁 표창장 위조 혐의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씨를 기소했다.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역린의 대가는 앞선 검찰 내 항명 때보다 몇 배는 더 가혹했다. 그는 여당의 '공공의 적'이 돼버렸고,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저항하는 그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6가지 혐의를 적용해 징계를 청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부당한 공격이 정치에 입문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어제 대법원에서는 조 전 장관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인간 윤석열의 이번 선택은 탄핵과 형사처벌로 귀결될 것 같다. 신념에 따른 남다른 선택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의 추락을 지켜보는 게 씁쓸하지만, 이젠 모든 걸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그의 마지막 선택이 대한민국을 위한, 국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길 바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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