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3 (금)

계엄 사유에 뜬금없이 등장한 '간첩법' [현장메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긴급 대국민담화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 사유 중 하나로 야당의 형법 98조(간첩법) 개정 비협조를 꼽았다. 2년여간 간첩법 개정 필요성을 알리는 기사를 써오는 동안 대통령실이 눈에 띄는 관련 입장을 낸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이제 와서 그게 계엄 사유의 하나라고 하니 당혹스럽다. 야당이 법 개정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여야가 국회에서 협상으로 풀어야 할 여러 입법 사안 중 하나다.

현행 간첩법 처벌 대상을 ‘적국 간첩’에서 해외 주요국과 같이 ‘외국 간첩’으로 넓히자는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 결과 여당이 법 개정을 당론 추진하고 야당이 일부 수용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를 통과한 게 한 달 전 일이다.

세계일보

배민영 정치부 기자


다만 야당은 과거 간첩사건 조작 등 ‘흑역사’가 반복될 것을 우려해 전체회의 상정을 미루고 있었다. 즉 법 개정 절차는 더디게나마 진행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법 개정을 바랐다면 개정 취지와 기대 효과, 부작용 방지책을 설명하고 야당을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법안이 소위를 통과한 마당에 계엄 사유로 간첩법을 넣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법 개정 노력은 좌초되게 생겼다.

대통령의 직책과 각종 실권은 승자독식 원리로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줄다리기 협상 끝에 ‘주고받기’ 원리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다. 주변에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단 윤 대통령은 이러한 원리를 여태 모르는 듯하다. 이번 담화는 보수 정권 대통령이 자기 변론을 위해 100% 안보 사안인 간첩법 개정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배민영 정치부 기자 goodpoint@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