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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이런말저런글] 두 개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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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냉전 해체의 기운이 확산할 즈음입니다. 후안 J. 린츠라는 이름의 독일 태생 스페인 정치학자가 에세이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듬해 1월 나온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출판사의 '민주주의 저널' 1990년 겨울호를 통해서입니다. 에세이 제목은 '대통령제의 위험들'(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입니다. 19쪽밖에 되지 않는 에세이는 훗날 두고두고 인용되며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짐작대로입니다. 지구촌에 대통령제 국가는 여럿입니다. 위험은 상존합니다. 그러니 그것의 핵심을 짚은 글은 잘 '팔릴' 수밖에 없겠지요. 'Dual Legitimacy'.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이 낱말의 위용은 특히 대단합니다. '이원(적) 정통성'이라고 번역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기서는 두 개의 정통성(또는 합법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정통성이 둘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에세이에 쓰인 이 단어가 지칭하는 것은 대통령과 의회(대한민국은 '국회')입니다. 그 둘은 선출된 권력으로서,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을 체현하고 있는 '대체 불가한' 두 주체라는 뜻입니다.

연합뉴스

국회 로고
[국회 제공] (연합뉴스 DB)



대통령제 원형 국가인 미국이나 우리나라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기본원리입니다. 하나가 권력 작용을 하기 어려우면 다른 하나가 그것을 대신해야 주권재민의 헌정주의에 부합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놓치는 순간 법의 지배(rule of law)는 땅에 처박힙니다.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행정을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방, 외교·안보, 재무, 치안 등 공권력 '원천'의 소재와 집행을 포괄하는 개념이겠지요.

권력 독식, 정치 양극화, 지지율과 무관하게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의 문제, 두 선출 권력의 갈등, 위기 대응에서 유연성 취약, 인치(人治)화, 권위주의화… 린츠가 에세이에서 진단한 대통령제의 위험들입니다. 누가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일 테지만, 그가 내각제를 선호하며 제도는 또한 절대 만능일 수 없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내각제는 내각제대로 대통령제만큼 위험이 많기 때문이지요. 제도냐 사람이냐 하는 논쟁은 그래서 무한 반복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대한민국 국회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Juan J. Linz, 『The Perils of Presidentialism』, Journal of Democracy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Volume 1, Number 1, Winter 1990 pp. 51-69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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