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증권부장 /사진=임성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한금융그룹은 1981년 신한동해오픈이라는 남자 프로골프 대회를 만들었다. 한국 골프산업에 힘을 주자는 취지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故)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같은 재일동포들이 모국에 지니고 있던 마음을 담은 행사이기도 했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한국에서 동해는 재일동포들이 사는 방향이고, 일본에서 본 동해는 고향땅 방면이다. 이들의 피에는 태극기가 흘렀다.
대회는 레이크사이드, 제일, 한성, 레이크우드 등 재일동포들과 연관이 있는 골프장에서 열리다가 2011년부터 인천지역으로 옮겨간다. 인천에 잭 니클라우스, 베어즈베스트 청라 등 신흥 명문 골프장이 생겼고 공항과도 가까워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오가기 편했다.
2011~2014년 동해오픈은 잭 니클라우스에서 열렸는데, 2015년 프레지던츠컵 개최 관계로 신한동해오픈이 베어즈베스트 청라로 장소를 옮겼다. 이후 7번의 대회를 여기서 치렀다.
문제가 생긴건 2017년. 하나금융은 인천 청라에 대규모 사옥을 짓는 장기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일단 하나금융 통합데이터센터(하나TI)가 먼저 완공됐는데 공교롭게 이 건물이 베어즈베스트청라 바로 앞에 자리잡았다. 신한동해오픈 TV중계에 경쟁사인 하나금융 로고가 카메라에 잡히는 일이 생겨 난리가 났다.
이후 신한금융은 카메라맨들의 촬영각도를 기술적으로 조정하고 시상식 단상의 위치를 바꾸는 묘수를 동원해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2년전부터는 이 마저 어려워졌다. 하나금융 사옥공사가 속도를 내면서 골프장 한 쪽 전망을 크게 먹어갔다. 지상 15층, 연면적 12만9500㎡ 규모의 공사이니 어떻게 해도 TV화면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에 더해 하나금융이 베어즈베스트 청라 경영권 인수를 제안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결국 신한금융은 베어즈베스트 청라를 포기하고 지난해는 일본, 올해는 영종도 클럽72CC에서 대회를 치렀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의 신경전은 이렇게 일단락 됐다. 신한금융이 떠난 골프장에서는 여자 골프대회인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이 열렸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고려아연 분쟁이 진행중이다. 현재 고려아연 본사는 그랑서울 빌딩이다. 1974년 종로에서 설립해 6년 뒤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으로 이전했다가, 사이가 틀어진 올해 3월 종로로 와 버렸다. 이 빌딩 맞은편에는 영풍과 손을 잡은 MBK가 입주해 있는 광화문 D타워가 있다. 이번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영풍은 종각 영풍문고 빌딩에 새 포스트를 마련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세 빌딩이 모두 도보 5분이내 거리다.
로펌도 광화문에서 오월동주를 하고 있다. 최 회장측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앤장과 영풍-MBK측 법률자문을 하는 세종 역시 D타워에 있다. 이들 로펌도 과거에는 서로를 위해 법률자문을 해주던 파트너들이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최 회장과 영풍-MBK 진영의 갈등은 최근까지 전개돼 왔고, 수면 위 뿐 아니라 물밑에서도 치열한 수싸움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치솟아 이익을 본 투자자도, 손실을 본 투자자도 있다. 정작 중요한 건 회사의 경쟁력 저하다. 고려아연은 세계 최대, 최고의 종합비철금속 제련회사다. 하지만 이번 경영권 분쟁으로 연구개발과 기술품질이 훼손될 기미가 보인다. 연구개발, 생산기술을 핵심 경쟁력인 고급인력들이 내편, 네편으로 분열하는 모습이 관찰된다는 게 회사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말이다.
고려아연은 불순물 제거, 고순도 정밀생산, 희귀금속 합금 등에서 독점적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맨파워다. 분쟁에 지치거나 실망해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 고려아연의 가치는 땅으로 추락한다. 최근 중국업체들이 한국 반도체 인력을 흡수해 간 것처럼 고려아연을 예의주시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천 청라의 지역적 가치가 높지 않았다면 하나금융이 사옥이전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라 골프장이 좋지 않았다면 신한동해오픈 개최지로 하나금융의 앞마당을 고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려아연은 가치가 유지돼야 분쟁대상이 된다. 인력이 이탈하고 기술이 뒤쳐지기 시작하면 세계최고는 과거형 수사로 돌아갈 것이다. 신한동해오픈은 베어즈베스트 청라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잭니클라스로 간다고 한다. 고려아연에선 누가 떠나고 남을까. 현명한 공존은 가능할까.
반준환 증권부장 abcd@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