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전부터 ‘정상 외교’ 행보 나서
각국 정부, 트럼프와 접촉에 안간힘
계엄 후폭풍에 대통령실 기능 정지
대미 외교 정상화에 與野 힘 모아야
이달 들어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으로 사실상 정상 외교를 개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트럼프를 위해 판을 깔아줬다. 화재 사고 후 5년여 만에 복구를 마친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에 맞춰 그를 파리로 초청했다. 덕분에 마크롱은 트럼프 당선 후 유럽 지도자로는 최초로 그와 양자 회담을 할 수 있었다. 아울러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의 만남을 주선하는 외교적 수완까지 발휘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트럼프는 윌리엄 영국 왕세자와도 독대했다. 암 투병 중인 찰스 3세 국왕을 대신해 프랑스로 건너간 윌리엄은 미·영 간 특수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
가장 눈물겨운 노력을 한 이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다. 트럼프 핵심 측근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친분을 십분 활용했다. 노트르담 행사가 끝나고 엘리제궁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 때 멜로니는 머스크를 매개로 트럼프한테 접근했다. 이후 멜로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트럼프, 머스크와 함께한 사진을 올리며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자랑했다. 구체적 내용이야 알 순 없으나 이탈리아 국민 다수는 ‘트럼프 시대에 미국과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느꼈을 법하다.
일본은 어떨까.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트럼프 당선 직후 그와의 양자 회담을 추진했다. 2016년 11월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세계 정상 중 처음으로 당선인 신분의 트럼프와 만나 미·일 관계를 논의한 전례를 꺼내 들었다. 트럼프 측은 “취임 전까지 외국 정상과 만남을 자제하겠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주요국 정상 여럿이 이미 트럼프와 회동한 상태에서 일본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명분은 사라졌다. 이시바도 조만간 당선인 트럼프와 대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국가원수나 정상이 직접 나서 트럼프와 말문을 트려고 애쓰는데 우리만 손을 놓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으로 한국은 당분간 정상 외교가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데다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려진 윤석열 대통령은 국외에서 기피 인물에 올랐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든 외국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정상 대접을 받기는 틀렸다. 각국 장관들이 모이는 자리에 차관을 ‘대타’로 참석시켜도 회의 내내 존재감 없이 겉돌다가 빈손으로 귀국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하물며 정상 외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선거운동 기간 트럼프는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제조기)이라고 불렀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받아내고, 한국 시장에 더 많은 미국 상품을 팔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한국 압박을 위해 ‘미군 철수’ 카드마저 꺼내 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내년 1월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이제 30일도 채 안 남았다. 대통령실을 대신해 외교부가 컨트롤타워가 되어서라도 대미 외교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경제 부처들도 예상되는 한·미 간 통상 이슈를 면밀히 점검하고 각종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흔히 “외교·안보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트럼프 시대에 한국이 ‘국제 미아’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부·여당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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