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면 ‘참다운 나’ 그려보게 돼
세상 혼란에 우리가 바라는 사회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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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사안에 대해 어느 한 편의 주장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마음을 바꿔 먹을 수 있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고 나는 지금껏 믿어왔다. “이념이란 좌우 모두에게 영토와 권력을 추구하려는 빌미에 지나지 않으므로, 참된 정의는 이념이나 논리로부터 벗어나 제삼자들이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야 비로소 구현된다”고 했던 영국 소설가이자 ‘더 타임스’ 기자였던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이 말을 내 믿음의 근거로 삼아왔다.
이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데에 정치는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느냐 하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해도, 정치는 이 사회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연약한 존재들을 고통에 쉽게 빠뜨려 버릴 수는 있다. 정치에 대한 이런 비관적인 믿음 때문에 평소에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하곤 했다. 정치인과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라면 나의 이런 믿음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정치에 무관심하라는 뜻은 아니다. 관심을 갖되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정치가 삶을 집어삼키지는 않도록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세상은 불안정하고, 그 위에 사는 우리는 불안하고, 그 누구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 줄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마음 건강도 지켜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나조차 이런 조언을 따르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화요일 밤, 나는 다음 날 있을 강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쏟아진 “비상계엄”이란 뉴스를 듣고 난 뒤부터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년 2월이 되면 세계일보에 ‘김병수의 마음치유’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한 지 딱 5년이 된다. 환자들이 가져다주는 느낌과 진료하면서 내가 깨달은 바를 글로 옮겨오면 되는 일이라, 시대가 어떻든 지금까지 그럭저럭 연재를 이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 칼럼에 쓰려고 준비했던 내용을 싹 다 지워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넋두리를 풀어 놓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시대의 수인(囚人)이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서 이 문장을 보고 나서는 그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멈춰 버렸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상식적이고 순조롭게 기능하는 질서에 의해 유지된다고 믿을 수 있어야 평온해질 수 있다. 공기가 오염되면 신체가 병드는 것처럼, 사회가 오염되면 정신에 병이 든다. 공기를 마시고 사는데 공기가 없는 것처럼 살 수 없듯, 혼돈의 시대와 아무리 거리를 두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아픈 건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비록 괴롭기는 하지만 정신의 고통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마음이 아플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참다운 나는 본래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혼란이 찾아오면 우리는 고통에 빠지지만 그때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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