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계엄과 '디지털 피난'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지난 12월3일 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국민들의 소위 '디지털 피난'이 이어진다. '디지털 피난'이란 인터넷, 전화 등 통신의 차단이나 검열 등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른 통신수단을 찾는 현상을 말한다. 계엄선포 후 국민들은 우선 서버가 해외에 있어 압수수색이 어렵고 보안이 강력하다고 소문난 텔레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또한 통신검열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IP(인터넷프로토콜)를 숨기는 VPN(가상사설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렇다면 과연 비상계엄 시 통신비밀 침해가 법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했으나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통신의 자유도 국가안전보장 등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으나 법률상 근거가 필요하다.

통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표적 법률이 통신비밀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수사 대상자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통신사업자에 요청해 제공받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제도'와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업자의 협조를 얻어 수사 대상자의 통신내용을 확인하는, 소위 감청으로 불리는 '통신제한 조치'가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엔 수사기관이 수사를 위해 전기통신가입자의 인적사항을 통신사업자에 요청해 제공받는 '통신자료 제공제도'가 있다.

또한 전기통신사업법 제85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전시·사변·천재지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중요 통신을 확보하기 위해 통신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한·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시 또는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전쟁의 효과적인 수행 등을 위해 국가 주요 기관 간에 설치·운용하는 국가지도용 통신 등 중요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통신사의 통신업무를 제한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한편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비상계엄의 경우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해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계엄법 제9조도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종합하면 특정한 범죄수사와 관련해 통신의 비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지만 비상계엄 시 일반적으로 통신의 자유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비상계엄 시 계엄포고령 위반 등의 범죄가 늘고 이에 따라 강제수사가 증가하면 스마트폰 압수수색,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따른 조치 등 통신비밀 침해가 확대될 수 있다. 또한 비상계엄 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므로 SNS 등에서 개인의 의사표현이 제한될 수 있다.

한편 디지털 피난처로 거론되는 스타링크와 같은 저궤도 위성통신의 경우 단말기만 있으면 국내 통신망을 거치지 않고 통신이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와 기간통신역무의 국경간 공급에 관한 협정을 맺고 정부로부터 국경간 공급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정부의 관여가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초연결사회로의 진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통신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라는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통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엄격한 요건에 따라 시행돼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업무 제한의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하고 비상계엄 시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별도 제한요건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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