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언 페어런츠팀장 |
1964년 10월 25일. 미국프로풋볼(NFL) 역사상 가장 희귀한 장면이 펼쳐졌다. 주인공은 당대 최고로 꼽히던 선수 중 한 명인 짐 마셜. 상대 팀 선수가 찬 공을 낚아챈 그는 60m를 질주해 득점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내달린 방향은 상대 진영이 아니라 자기 진영이었다.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선수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확실히 그는 대단한 선수였다. ‘실수했다면 바로잡아야지. 내겐 아직 선택의 기회가 있어’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에서 생애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캐럴 드웩 스탠퍼드대(심리학) 교수는 『마인드셋』에서 마셜을 언급하며 ‘성장 마인드셋’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지금 상태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짐 마셜이 떠오른 건 대통령 때문이다. 살면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장면을 목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계엄은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시절 얘기라고 생각했다. 탄핵은 또 어떤가. 우리는 이미 대통령 탄핵 사태를 두 번이나 겪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 인용됐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한데 다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자살골을 넣은 짐 마셜의 심정이 이랬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 긴급 담화를 갖고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고, 그는 탄핵의 위기에 놓였다. KTV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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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자 무기력한 마음이 든다. 힘들게 대통령을 탄핵한다 한들 다음 대통령은 괜찮을까. 온 국민이 거리로 나서 끌어내리고 다시 뽑고 또 끌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건 아닐까. 전 국민이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정파의 이익만 계산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절망스러운 기분이다.
하지만 마셜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살골을 넣었지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복탄력성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마셜은 79년 은퇴할 때까지 282경기에 연속 출장하며, 130.5회 공격 저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렇다. 자살골을 넣는다고 경기에서 지는 건 아니다. 설령 경기에 진다 해도 선수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우리도 마셜과 다르지 않다.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포기하면 안 된다. 한국의 회복탄력성을 믿는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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