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호국 영웅 및 유족들과 함께 행진을 지켜보다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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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2·3 내란사태 당시 비상계엄 기획·선포부터 군 병력 투입 지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계엄 선포를 전후해 경찰과 군을 동원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 기관은 물론 문화방송(MBC) 등 언론사 장악 및 정치인 등 체포를 지시하고, ‘계엄포고령’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직접 했다는 등의 증언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가 더욱 또렷해지는 모양새다.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12·3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로 기소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윤 대통령은 모든 걸 김 전 장관에게 맡겨놓고 뒷전에 물러나 있지만은 않았다. 11일 한겨레 취재 결과, 김 전 장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법률을) 검토했다”며 ‘계엄포고령 초고는 본인이 작성했으나, (이후) 윤 대통령과 함께 의논하며 최종본을 완성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포고령 작성 단계에서부터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다.
또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3일 저녁부터 계엄 해제 직후까지 윤 대통령이 상황을 직접 진두지휘했음을 보여주는 진술도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불러 문화방송 등 계엄 전 장악해야 할 장소 10곳을 직접 찍어준 사실이 이날 확인됐고,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이 추진되던 3일 밤~4일 새벽엔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에게 최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707(특수임무단)의 동선’을 묻거나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한 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시도가 실패한 이후엔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내부 별도 공간인 ‘결심지원실’을 직접 찾아가 김 전 장관 등 계엄군 수뇌부를 강하게 질책하며 30여분간 별도의 회의를 갖기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자리에선 ‘2차 계엄’이 논의됐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이런 구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왔던 정황들도 포착된다. 검찰이 ‘충암파’(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로 꾸려진 군대 내 사조직) 중 하나인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올해 초여름부터 시국을 걱정하며 불쑥 계엄 이야기를 꺼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중앙일보의 이날 보도도 그 근거 중 하나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윤 대통령이 평소 화나면 ‘이거 계엄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당시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참모는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곽 특수전사령관이 10일 국회에서 “(김 전 장관으로부터) 최종 임무를 받은 게 12월1일 일요일”이라고 진술한 것과 “군 지휘부에 지난 1일 계엄 임무를 전달했다”는 김 전 장관의 검찰 진술을 보면, 적어도 비상계엄이 실제 시행되기 이틀 전부터 준비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이 계엄군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한두개가 아니”라며 “모든 증언이 가리키는 내란의 수괴는 윤석열이다”라고 했다.
이승준 이지혜 배지현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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