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화학·생리학상 시상 후 “Dear 한강” 네 번째로 호명
엘렌 맛손 “한강 작품 속 인물들, 나약하지만 전진한다” 연설
한 작가 “문학은 폭력에 맞서는 행위” 연회서 4분간 소감 발표
스톡홀름 물들인 한강 2024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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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후 4시 정각에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브의 입장으로 시작됐다.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작가는 검은색 이브닝드레스와 검은 파우치를 들고 시상식장 무대 왼편의 의자에 착석했다.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문학상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에 이어 네 번째로 호명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위원인 엘렌 맛손이 한강의 이름을 영어로 호명하며 “친애하는(dear) 한강!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한 작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중앙으로 향하자 1500여명의 청중이 기립 박수로 축하했다. 그는 국왕으로부터 노벨 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고, 미소를 지으며 국왕과 악수한 후 청중에게 인사했다.
이날 노벨상 시상식의 모든 절차는 스웨덴 주요 연례행사로서의 격식을 갖춘 가운데 진행됐다.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착용했으며 수상자들의 입장 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연주됐다. 이날 연주는 구스타브손이 지휘하는 스톡홀름 왕립 필하모닉 관현악단이 맡았고, 소프라노 잉엘라 브림베리가 노래했다. 한 작가가 메달을 받은 직후에는 영국의 여성 오보에 연주자 겸 작곡가 루스 깁스의 곡 ‘암바르발리아’가 연주됐다.
스웨덴 한림원 회원이자 소설가인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한강의 작품세계에 대해 5분간 연설했다. 그는 한강의 작품에 등장하는 ‘흰색’과 ‘붉은색’의 의미를 설명했다. 맛손은 “흰색은 한강의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눈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에 보호막을 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흰색은 또한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 붉은색은 생명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고통, 피, 그리고 칼의 깊은 상처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흰색과 붉은색은 작가의 소설들에서 역사적인 경험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등장인물의) 깊은 내면에는 완고한 저항이, 말보다 강력하고 조용한 고집이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필요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다시 말하지만 잊는 것은 목표가 아니며 잊을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받고, 취약하고, 나약하지만 한발 더 내디디고,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고, 한 장의 서류를 더 요구하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인터뷰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며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상식이 열린 스톡홀름 콘서트홀 주변에는 이른 시간부터 한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100여명의 교민과 한국에서 온 각계 인사들이 모였다. 스웨덴한인회의 김애경씨는 “한강 작가를 축하하기 위해 2시부터 나와 기다렸다”며 “제가 광주 출신이라 한 작가님의 수상이 더 새롭게 여겨지고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온 김강일씨(가명)는 “역사적 순간에 아이와 함께 이 장면을 경험하고 싶어 런던에서 왔다”면서 “2024년 계엄령이 내린 서울 거리에서도 또 다른 수많은 동호가 생길 수 있었던 엄중한 시기라서 더 뜻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상식 후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노벨상 연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작가는 짧은 연설을 통해 약 4분 동안 소감을 말했다. 진행자는 한국어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며 한강의 이름을 불렀다.
한 작가는 영어로 발표한 소감에서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시킨다. 이런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고 있다. 그리고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맞서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고 강조했다.
한 작가는 어린 시절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비를 바라보던 장면을 회상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1인칭 시점을 한꺼번에 체험한 이 순간은 경이로웠다”며, 문학을 통해 이 같은 경험을 반복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언어의 실타래를 따라 다른 이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내면과 마주하면서, 내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질문들을 그 실타래에 실어 보내곤 했다”고 말해, 문학이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임을 시사했다.
한 작가의 연설은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는 문학의 본질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과 아시아 여성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뿐만 아니라, 문학이 가진 본질적 의미와 힘을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도 되었다.
스톡홀름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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