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이런 명패를 집무실 책상 위에 두고 있다고 자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이제 자신의 말처럼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시기가 왔다. 취임 이후 워낙 독선적인 태도로 비정상적인 일을 계속 벌여왔지만 그의 최후가 이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건희, 명태균과 얽힌 일로 말미암아 특검 수사를 받고 탄핵당할 거라는 평범한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일주일 넘게 현직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그가 어떤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주 토요일, 안타깝게도 여의도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했다. 예정된 약속을 취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일 현장에 나간 동료들은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고 분위기가 좋아서 힘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촛불이 아이돌 응원봉으로 진화한 만큼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세대교체도 이뤄져서 참 다행이다.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 아스팔트 위에서 추위를 견디며 민주주의를 외친 동료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이번주 토요일에는 반드시 집회에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45년 만의 계엄령이라는 절망과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희망이 교차하는 그 현장 말이다.
오는 토요일, 다시 대규모로 국회 앞에 집결하는 시민들 앞에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10년 안에 두 번 연속으로 탄핵당하는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크게 뉘우치고 사죄해야 한다. 박근혜,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당 차원의 무능과 불의가 없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연출된 이미지로 국민을 속여 정권을 잡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말 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퇴진해야 질서가 잡힌다. 윤석열만 핀셋으로 뽑아내고 자신들은 다시 야당 국회의원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의리’를 지키면 뽑아줄 것이라는 오만 앞에 분노가 치민다. 윤석열의 수준이 그들의 수준이다.
불과 일주일 사이, 일상이 무너졌다. 종일 방송되던 뉴스특보는 그쳤지만 ‘탄핵’ ‘하야’ ‘수사’ 같은 단어들의 블랙홀로 사회 전체가 빨려들어갔다. 국가신용도가 떨어지고 안보위험이 높아지고 환율이 오르면서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탄핵과 대선까지 빨라도 6개월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법적·현실적 문제들이 터져나올 것이다. 7년 전 탄핵과 조기 대선을 경험했다고는 하지만 그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고 복잡하다. 몇몇 비선과 문고리 권력이 아니라 국무위원들과 군이 연루됐다. 수사 주체는 검찰·경찰·공수처·특검으로 나뉘고 탄핵재판을 하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내년 상반기까지 다섯 명이 교체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 결과에 따라 법원이 대선을 좌우할 수도 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모두 초유의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실험이다.
당분간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집회에 나가는 시민들이 모두 민주당 편이라는 생각 역시 오산이다. 국민의힘은 극우정당이고 민주당은 보수당이다. 미래 의제인 노동과 기후 문제에서 민주당은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 미국 민주당처럼 명망가 엘리트 정당으로 안착한다면 윤석열보다 더한 정치적 괴물에게 다시 정권을 내줄지 모른다. 이재명 대표가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을 굳이 “한국의 트럼프”라고 한 것은 기괴한 느낌을 준다. 트럼프처럼 재판을 받으면서도 당선되어 셀프사면을 한다는 뜻이라면 사적인 욕망을 지나치게 드러냈고, 말 그대로 트럼프를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그는 타락한 금권정치가이다.
상상하기 힘든 2025년이 오고 있다. 그래도 윤석열 취임 직후 5년의 지루함을 견디고자 ‘윤석열 시계’가 나왔던 때에 비하면 그나마 상황이 빨리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있다. 경제강국, 문화강국인 대한민국을 옥죄던 정치가 달라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두 번이나 등장한 시대착오(한번은 1970년대로, 한번은 1980년대로)를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하는 시점이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밀란 쿤데라) 윤석열 시대에 보냈던 정치에 대한 냉소가 진지한 책임감으로 승화해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길!
한윤정 전환연구자 |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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