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 만찬에서 한강이 감사 연설을 전하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노벨의 날'로 불리는 10일(현지시간) 오후 4시. 한강은 검은 드레스와 검은 구두를 신고 푸른 카펫이 깔린 스톡홀름 콘서트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기 없는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수수한 드레스를 입었지만 연미복을 입은 10명의 남성 수상자들 가운데서 그는 단연 돋보였다.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를 비롯한 수상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상을 받은 11명 중 여성은 한강 작가 뿐이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노벨상 시상식은 1926년부터 매년 12월 10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유서 깊은 행사다. 2차 대전으로 2년간 시상식이 열리지 않은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60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에서 그는 작은 가방을 등 뒤에 둔 채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고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로 심사평을 경청했다. 엘렌 맛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이 스웨덴어로 한강의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영어 스크립트를 펼쳐 읽었다. 이윽고 그의 이름이 불렸다.
"친애하는 한강,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앞으로 나오셔서 폐하께 상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10명의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스웨덴 왕족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는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나와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이어 그의 손에는 메달과 증서가 전해졌다. 좀처럼 크게 웃지 않던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1700여명의 청중은 환호와 함께 그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함께 축하했고, 그는 오랜 박수를 받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에는 무대 위에 남아 번역가·교민·출판계 관계자들과 악수를 하며 담소를 나눴다. 한강은 이날 상을 받은 11명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이 스웨덴 칼 16세 구스타브 국왕으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건네받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어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스톡홀름 시청에서 '노벨 만찬'이 진행됐다. 한강은 스웨덴 마들렌 공주의 남편인 크리스토퍼 오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시청 '블루홀'에 입장했다.
그는 안드레아스 노를리엔 국회의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등과 함께 중앙에 마련된 VIP 테이블에 앉았다. 칼 구스타브 국왕이 노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축배사로 만찬의 시작을 알린 뒤엔 전채·메인·디저트로 이뤄진 3코스의 식사가 나왔고 중간중간 음악극과 악기 연주 등 다양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만찬은 '노벨 위크'의 가장 큰 행사로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시상식(스톡홀름 콘서트홀)이 끝난 이후 스톡홀름 시청의 '블루홀'로 자리를 옮겨 열린다. 이날은 수상자와 수상자의 가족, 스웨덴 왕족, 총리·국회의원 등 스웨덴 주요 인사, 노벨위원회 및 한림원 관계자, 과학계 및 문학계 주요 인사, 취재진 등 1250여 명의 귀빈이 만찬에 참석했다.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왕족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후 10시 50분. 스톡홀름 시청에 또렷한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강을 소개하던 스웨덴 대학생 사회자가 한국어로 낭독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언론사에 사전 배포된 프로그램 식순에는 없던 내용이다. 이날 연회장에서 노벨물리학상·화학상·생리의학상·경제학상 수상자는 모두 영어로만 소개됐으나 한강은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로 호명됐다.
이어 단상 앞에 선 한강은 예의 차분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한강의 연회 연설은 영어로 이뤄졌다.
그는 "여덟 살이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며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는 거세게 내렸고, 스물네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모여 몸을 피했다"고 회고했다. 이 순간은 그에게 경이로운 기억으로 남았다고.
"그들 각자도 저처럼 이 비를 보고 있었고, 저처럼 이 습기를 느끼고 있었죠. 수많은 1인칭 시점이 있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한강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받은 노벨문학상 증서. 왼쪽면엔 이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인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을 쓴 사람(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이란 문장이 스웨덴어로 적혀 있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는 이어 "글을 쓰며 경이로움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학은) 언어라는 실을 따라 다른 이의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며 제게 가장 소중하고도 절박한 질문들을 그 실에 의지하여 다른 이에게로 보내는 행위"라면서다.
한강은 그가 문학을 통해 천착한 질문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을 통해 던져져 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 짧은 세상살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간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3분간의 영어 연설에서 그는 문학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힘주어 말했다.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만찬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본질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이 문학을 위한 상임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스톡홀름=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