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정오 대구 서문시장의 칼국수 가게. 당초 가게 내부 흰 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과 친필 서명이 걸려 있었지만, 현재는 비어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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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윤석열 대통령)이 싫어서 사진을 내린 건 아닙니다. 속 시끄러워서 그래요.”
11일 정오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70대 상인 A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4월 당선인 신분으로 찾았던 곳이다. 이후 가게 곳곳에는 윤 대통령 사진과 그가 직접 쓴 ‘대구 시민들의 사랑 듬뿍 받으세요’라는 글귀, 친필 서명이 걸려 있었다. 다만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A씨가 사진과 서명을 떼어 내 집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A씨는 “손님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듣기 싫어서 뗀 것뿐이다”며 “비상계엄 선포 후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 잠도 못 잤다.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A씨 반응에 칼국수를 먹던 시민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박찬우(65)씨는 “거야(巨野) 때문에 국정 운영이 안 된다고 판단했으니 비상계엄을 선포한 거 아니겠냐”며 “물론 군대를 동원한 건 잘못했지만, 야당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석한 50대 여성도 “실망은 했지만, 탄핵이 답은 아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집권당이 될 수 있으니 좀 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신발을 구입했다. [사진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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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은 보수의 텃밭 대구에서도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보수진영 ‘현장정치 1번지’로, 윤 대통령이 대선 하루 전 마지막 유세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을 정도로 상인과 시민 호응이 컸던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4월 “서문시장에만 오면 아픈 것도 다 낫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문시장 100살을 기념해 열린 ‘2023 서문시장 100주년 대축제’에는 윤 대통령 부부가 직접 찾아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지난 8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계엄 사태'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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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문시장 곳곳에서는 사태를 의식한 듯 조용히 윤 대통령 사진을 내리는 등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다만 상인 대부분이 “탄핵은 안 된다”고 했다. 이불을 파는 50대 상인은 “(윤 대통령이) 잘못했지만, 이 사태까지 오게 한 건 야당이다. 무조건적인 탄핵은 해결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만난 일부 젊은 시민과 상인은 “‘보수의 심장’ 대구의 민심이 변했다”고 했다. 이종현(30)씨는 “지금도 비상계엄을 왜 선포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대구라고 해서 더는 윤 대통령 편을 들어줄 수 없다. 탄핵 말고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도 “21세기에 군을 동원한다는 판단 자체가 잘못됐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문시장 육교 위에서 매일 저녁 대구에서 열리는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를 안내하고 있는 한 청년 유튜버는 “서문시장에 와서 윤석열 퇴진을 촉구하는 방송을 진행해도 아무런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 만큼 대구의 민심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육교 위에서 한 청년 유튜버가 매일 저녁 대구에서 열리는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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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구에서는 윤석열심판대구시국회의를 중심으로 매일 오후 7시 중구 동성로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단체에는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의당·진보당 대구시당, 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 등 85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속해 있다. 이들 단체와 시민은 손에 “우리는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TK 콘크리트’가 TK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 등이라고 적힌 현수막 등을 들고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국회 표결을 거부한 국민의힘 해산을 촉구하고 있다.
또 대구 수성구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는 시민이 보낸 국민의힘 규탄 근조화환이 배달되기도 했다. 화환에는 ‘대대손손 그 뻔뻔함을 기억하겠습니다’ ‘내란 공범 국민의힘은 생존의 이유를 탄핵 찬성으로 증명하라’는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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