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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스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NYT 고별 칼럼 “세계가 어쩌다 이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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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간 써오던 NYT 칼럼 연재 종료

“그가 저널리즘에 쏟은 관심을 보는 건 큰 영감”

조선일보

2016년 10월 6일 위클리비즈 10주년 기념 경제, 경영 글로벌 컨퍼런스에 참가한 폴 크루그먼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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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71)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10일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직에서 25년 만에 은퇴했다. 크루그먼은 지난 2000년부터 일주일에 많게는 네 번 빠지지 않고 경제·정치·문화 등 전방위 분야에 대한 칼럼을 써왔다. NYT는 이날 그의 은퇴 소식을 알리면서 “자신의 글에 쏟은 깊은 관심과 강한 직업 윤리를 보는 것은 큰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크루그먼은 이날 ‘분노의 시대에 희망 찾기’라는 제목의 고별 칼럼에서 “2000년 1월부터 일해왔던 NYT에 게재하는 마지막 글”이라며 “지난 25년간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고 했다. 그는 NYT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평화와 번영을 당연하게 여겼고, 유럽에서도 정치·경제적 통합이 진행됐다고 했다. 그는 “1999~2000년대 미국인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초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국가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며 “당시 미국인들은 평화와 번영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낙관주의가 분노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화를 내는 사람들은) 엘리트층에 배신감을 느끼는 노동 계급뿐만 아니라 차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억만장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낙관론이 꺾인 이유는 대중이 이제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 그들이 정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1년 9·11 테러 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감행한 이라크 침공, 2008년 금융 위기와 2012년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국가들) 경제 위기 등이 미 정부와 금융권 등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취지다.

그는 “우리가 처한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타나고 있는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가장 저급한 자들이 통치하는 체제)’에 맞서 싸운다면 결국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성 친(親)민주당 성향의 크루그먼은 이번 대선 기간에도 공화당 후보로 나온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그는 이날 “나는 분노가 ‘나쁜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지만 그들을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고 했다.

조선일보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이자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이 9일 NYT 칼럼 연재를 종료한다고 밝히며 쓴 마지막 칼럼. 제목은 '나의 마지막 칼럼: 분노의 시대에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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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뉴욕주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크루그먼은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1년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예일대·MIT·스탠퍼드대 등에서 교수를 지내다 2000년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로 옮긴 직후 NYT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미국을 넘어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0년 1월 2일 게재된 첫 칼럼 제목은 ‘다시 한번 생각하다’이다. 닷컴버블(급성장했던 인터넷 기업들의 자산 가치 폭락) 등 당시 이슈를 다루면서 새로운 세기에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이 가져올 변화를 조망했다.

크루그먼은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 등 당시 아시아 금융 위기도 예견했다. 한국 외환 위기가 일어나기 3년 전인 1994년 기고 글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가들의 발전은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과 인력 등 생산요소를 너무 많이 투입한 결과이므로 조만간에 위기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했었다. 2005년에도 미국의 경상 적자를 메워주던 외국 자금 상당 부분이 미국 부동산 가격 ‘버블’을 형성하고 있다며 2006~2010년에 큰 금융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해 세계 금융 위기를 내다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크루그먼은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점에 해답을 제시하려는 경제 이론 정립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는 나라들에 의해 세계무역이 주도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무역은 지역별로 발생하는 비교우위 때문만이 아니라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발생하므로, 같은 산업에서도 국가 간 수입과 수출이 이뤄진다”는 논리를 펼쳤다.

크루그먼은 민주당 진영에선 ‘영웅’이었지만 일각에서는 당파적인 학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NYT는 크루그먼의 은퇴를 알리는 별도 기사에서 “민주·공화당을 넘어서 지도자들을 긴장시키는 칼럼을 써왔다”면서 크루그먼이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후임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서도 매우 강경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크루그먼은 오바마가 2009년 1월 당선인일 때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놓은 은행 부실 자산 정리 계획 등에 “한참 모자라는 대책”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NYT는 “그는 계속해서 큰 싸움에 뛰어들어, 정책에 대해 깊이 있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권력자들을 견제하는 외로운 목소리로 어려운 진실을 말해왔다”고 했다. NYT의 여론 편집자 닉 폭스는 “수백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하품이 절로 나오는 경제 전문가의 칼럼에 중독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라며 “그는 복잡한 내용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이중적 표현과 난해한 표현은 잘라냈다. 일주일에 네 번이나 이렇게 즐겁고 통찰력 있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했다. 크루그먼은 “다른 곳에서도 내 견해를 계속 표현할 예정”이라며 집필 활동 자체는 계속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 세계 매체에 왕성하게 기고하거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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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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