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농구선수 13살 연우가 슛 연습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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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은 다 해도 돼요. 농구 그만두라는 말만 하지 마세요.”
연우(가명·13·여)는 시시때때로 농구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말을 엄마에게 건넨다. 발목이 퉁퉁 부은 채로 엉엉 울며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병원을 안 가겠다. 남은 5분 경기를 봐야겠다”고 떼썼을 정도로 농구를 좋아한다. 그 꿈을 지켜주는 게 엄마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됐다. 그럴 수 있을까. 일하기엔 아픈 몸과 빠듯한 생계, 운동 지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할 때면 불안과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죽고 싶어”라고 했던 아이가
4년 전까지만 해도 연우에게는 ‘꿈’이 없었다. 이제 갓 9살이 된 아이는 엄마를 만날 때면 “나 죽고 싶어. 나 왜 태어났어?”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아빠는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화가 나면 엄마의 배를 걷어찼다. 엄마는 수차례 유산했고, 겨우 얻은 연우를 끔찍이 아꼈다. 하지만 견디지 못했다. 도망치듯 헤어졌다. 아빠는 자신이 벌이가 있으니 연우를 키우겠다고 고집했다. 엄마와 연우는 떨어져 살았다. 엄마는 “그때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자책했다.
아빠 손에 맡겨진 연우는 방치됐다. 엄마가 종종 “저녁 뭐 먹었어?”라고 물으면 연우는 “라면이요”라고 답했다. 밥통에선 쉰내가 났다. 목 뒤엔 때가 끼었다. 집은 쓰레기장 같았다. 홀로 집을 떠난 엄마 마음에 죄책감이 쌓여갔다.
“연우가 흰 민소매와 속바지만 입고 학교에 왔어요.” 담임 교사가 어느 날 엄마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했다. 그 전화를 받고 엄마는 연우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생활이 변변치 않을지라도 일단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우는 그 시절 얘기를 할 때면 웅얼거리며 답을 피했다.
그런 연우가 눈을 반짝였던 건 ‘농구’라는 단어를 말할 때였다. “급식실 앞이었나, 코치님이 다가와서 ‘농구 재밌어. 농구부 올래?’라고 하셨어요.” 엄마와 같이 살기 시작한 2021년 봄, 초등학교 농구부 코치의 첫마디를 연우는 생생하게 기억했다. 연우는 “농구가 스포츠인 줄도” 몰랐다. 꿈도, 취미도, 관심도 없었던 때다. 몇번이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코치는 서너달을 포기하지 않았다. 연우는 “끝까지 ‘해볼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것”이라며 “공을 넣는 순간도 좋고, 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좋고,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고 했다. 농구는 지금은 연우의 전부다.
농구 1년 만에 개인상…커가는 ‘국대 꿈’
중학교 1학년인 연우의 키는 173㎝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10㎝가 훌쩍 컸다. 힘도 유난히 셌다. 경기만 시작하면 폭주기관차처럼 뛰어다녀 농구화를 한달에 한번은 새로 사야 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를 치렀는데 ‘저 애 되겠는데’라는 감독·코치님들의 말을 들었어요.” 수줍게 연우 자랑을 시작하는 엄마의 표정이 빛났다.
연우는 농구 시작 1년 만인 2022년 한국초등학교 농구연맹 여자 부문 장려상을 탔고, 이듬해 협회장배 전국초등학교 농구대회 미기상(멋진 경기·선수상)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전국남녀종별 농구선수권대회에서도 미기상을 받았다.
지나달 27일 농구선수 연우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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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경기력을 발휘해 팀에 공헌했다”는 문구를 연우는 특히 좋아한다. 연우가 속한 팀도 승승장구했다. 2021∼2022년엔 5위에 머무는가 싶더니, 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해부터 3위로 올라섰다. “조금만 더 해보자, 할 수 있다”고, 팀원들끼리 서로를 북돋워주는 말들이 연우는 소중하다고 했다. 농구는 연우에게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도, 자신이 응원해줄 사람도 많다는 걸 깨닫게 해준 운동이다. 그렇게 연우는 자신의 앞에 놓인 미래를 나열할 줄 아는 청소년이 돼간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유(U)16(16살 이하 선수) 국가대표를 뽑거든요. 열심히 훈련해서 나가고, 나가지 못한다면 유18 국가대표가 또 있거든요. 그것도 노려보고요. 최종 목표는 프로에 가는 거니까 더 열심히 훈련하게 되겠죠.”
농구공을 쥘 때 가장 빛나는 아이를 ‘무한’ 지원해주고 싶지만, 엄마는 초라하다. 연우를 데려오고 나선 한동안 자가면역 질환을 앓았다. 오랜 가정폭력의 후유증이 남아있는데다 야간 택배나 주말 예식장 아르바이트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무리하게 일한 탓이다. “온몸, 머릿속까지 염증이 생기고, 그대로 곪아버리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대상포진을 앓는 느낌이었어요.” 잇몸이 무너져 앞니로 씹을 수 없는 상태가 됐고, 설상가상으로 허리디스크 증상까지 있었다. 안정적인 직업은 가질 수 없었다. 손에 들어오는 건 아르바이트 급여(평균 70만원)와 정부 지원금(50만원) 등을 합쳐 한달 120만원 수준이었다.
“내가 못해주면 어떡하지” 엄마는 애가 타고
연우가 재능을 펼칠수록 엄마 마음은 무거워졌다. 월세를 제외한 전부를 연우가 필요한 것에 쓰는데도 부족했다.
발가락과 발목을 다쳤던 연우가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일주일에 10만원을 써야 한다. 농구부를 운영하기 위한 학교 발전기금으로 매달 25만원을 내야 한다. 한달에 한번 바꿔야 하는 농구화(20만∼25만원)와 테이핑·양말·스포츠용품 등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연우에게는 ‘돈을 들이면 더 좋은’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점이 엄마를 더 애타게 한다. “친구들은 키 크는 약을 먹는다고도 하고요. 그게 한달분 20만원이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부터는 서울까지 가서 트레이닝을 받던데 시간당 15만원이에요. 저는 뭣도 모르고 시킨 건데, 좀 잘한다는 아이들을 보니까 부모님들이 지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지난달 27일 농구선수 연우가 슛 연습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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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요즘 밥을 먹다가도 ‘연우 꿈은 유16에 들어가는 거라는데 내가 못해주면 어떡하지, 나중에 날 원망을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연우는 “괜찮아요. 이거 비싼 거잖아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걱정하는 연우 몰래 배달을 한번 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루 더 한다.
‘연우의 꿈’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저는 뭘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연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고, 즐기고 있잖아요. 다 해주고 싶어요. 일이든, 생활이든, 제 삶의 테두리는 연우가 쫓는 꿈의 방향에 그대로 맞춰져 있어요.” 엄마는 병원도 잘 가지 않는다. 제 몸을 챙기기보단 연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주고 싶어서다. 그 모습이 걱정되는 연우는 가끔 운다. “엄마가 없어질 것 같아요.” 엄마가 전화만 안 받아도 대성통곡을 한다.
연우에게도 ‘꿈’을 물었다. 신이 난 표정으로 롤모델인 프로 농구 선수를 하나둘 꼽던 연우는 “농구 선수를 하다가 결국은 코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저를 가르친 코치님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꿈’을 붙잡고 엄마와 연우는 살아내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연우 가족을 돕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85-999966-18-004 예금주: 월드비전).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주시고 싶으신 분은 월드비전 대표번호(02-2078-7000)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후원에 참여하신 뒤 월드비전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으실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1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연우의 농구 관련 훈련비, 농구용품 구입비, 교육비, 생계비를 지원하는 데 사용됩니다. 월드비전은 연우가 목표했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후원금을 투명하게 전달하고 그 사용 내역을 보고하겠습니다. 목표 금액인 1천만원을 초과해 모금될 경우, 연우 가정의 뜻에 따라 추가 금액은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가정을 지원하는 데 사용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이 함께한 ‘2024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도형이네 가족의 사연(한겨레 11월5일치 13면)을 전해드렸습니다. 도형이의 사연이 소개된 뒤 245분께서 “도형아, 힘내고 건강해라”, “도형아, 일어나자”라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971만5852원(12월6일 기준)의 정성을 재단에 전해주셨습니다. 초록우산은 “소중한 후원금은 도형이의 재활치료비, 의료소모품 및 의료보조기 구입과 치료 부대경비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도형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귀중한 나눔을 결심하고 실천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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