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엔씨소프트 연구개발(R&D)센터. 엔씨소프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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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분기 적자를 낸 엔씨소프트(엔씨)가 지난 5일 신작 ‘저니 오브 모나크’를 출시해 분위기 반전에 나섰지만 이용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엔씨는 연이은 실적 악화로 최근 대규모 권고사직과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위기는 어디서 왔고 앞으로 엔씨는 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엔씨 주가는 지난 5일 20만6000원(종가 기준)으로 전날 종가 대비 14.35% 급락했다. 회사의 대표 아이피(IP·지식재산권) ‘리니지’를 활용한 새 게임 ‘저니 오브 모나크’가 사전예약 800만명을 돌파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글로벌 출시 첫날 이용자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가는 그 이후에도 이틀 연속 내리며 9일 종가 기준 20만원대가 무너졌다.
이 게임은 이용자가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스테이지를 깨고 보상을 얻는 ‘방치형 게임류’다. 지난해 말 중국 조이나이스게임즈가 출시해 히트한 ‘버섯커 키우기’와 비슷한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NC 실적 부진 왜?…‘성공 방정식’ 집착이 독 됐다
엔씨는 2017년 6월 출시한 ‘리니지M’을 시작으로 모바일 게임 시리즈(리니지2M·W)가 고속성장을 이끌어왔다. 이들 게임은 일종의 ‘뽑기’ 개념인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이용자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과금 구조가 특징이다. 피시(PC) 게임 시절부터 리니지를 즐겨 했던 ‘린저씨’(리니지와 아저씨의 합성어)들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억 단위의 돈을 쓰는 주요 고객이었다.
엔씨 사업 조직에 근무했던 ㄱ씨는 “한 달에 3억원 이상 쓰는 이용자도 많았다”며 “일반적인 카드사의 게임 결제금액 한도는 월 1천만원인데, 여러 개의 카드를 돌려가며 결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엔씨는 2022년 역대 최고 매출(2조5718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모바일 게임 비중은 76.8%에 이르렀다.
하지만 리니지 시리즈의 성공 사례를 모방한 경쟁사들이 저비용으로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을 연이어 출시하면서 이용자들의 피로감이 커졌고, 트렌드 변화로 모바일 게임의 인기가 주춤하면서 엔씨의 성공 가도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해 엔씨의 영업이익(연결기준)은 1373억원으로, 전년(5590억원) 대비 75.4% 급감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지난 2018년 10월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회사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사행성 논란과 관련해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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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MMORPG’ 왜 어려울까
업계 안팎에선 엔씨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중심의 ‘원 툴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장르·플랫폼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니지 시리즈의 성공에 도취된 주요 경영진의 입김이 변화의 발목을 잡았다는 게 직원들 주장이다. 엔씨에서 5년 이상 게임을 개발한 ㄴ씨는 “개발자들의 새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택진 대표를 비롯해 엠엠오알피지 장르로 성공을 경험한 경영진이 많다 보니 최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애초 기획했던 게임의 방향이 (MMORPG 스타일로) 바뀌거나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와해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 직접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기는 김 대표의 스타일은 회사의 변화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게 직원들의 생각이다. 엔씨의 한 아트 담당 직원은 “김 대표는 ‘게임 캐릭터의 신발이 어울리지 않는다’처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했다”며 “대표가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지적하다 보니 (게임 개발 스튜디오) 실장들은 ‘알아서 조심하자’가 되고, 실무자들은 어차피 반려될 걸 알기에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만 일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선 당장 매출이 많은 모바일 엠엠오알피지 개발 부서에만 고액의 성과급이 지급되는 것도, 회사의 체질개선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같은 평사원이라고 해도 연말 성과급이 “리니지2M 개발팀은 7000만원, 비 엠엠오알피지 개발팀은 10여만원”(5년 이상 근무한 엔씨 재직자)을 받다 보니 직원들도 회사로부터 더 많은 지원과 보상을 받는 주력 게임 부서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재민 엔에이치(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겨레에 “모바일 게임 시장 자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다 보니, 이 시장에서 업계 1위였던 엔씨가 제일 힘든 것”이라며 “엔씨의 비 엠엠오알피지 게임을 다른 게임사가 출시했다면 좋게 평가받았을 건데, 엔씨이기 때문에 (리니지 IP 게임들의 매출 성과에 밀려) 내부적으로 등한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엔씨소프트가 지난 5일 글로벌 241개국에 동시 출시한 신작 ‘저니 오브 모나크’. 엔씨소프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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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의 구조조정,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3월부터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 체제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엔씨는 최근 게임 개발 스튜디오 등을 4개 자회사로 내보내고, 대규모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달 실적발표회에서 본사 직원이 3000명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본사 직원 수는 약 4900명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회사가 올해 2분기 88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가운데 김 대표의 동생 김택헌 전 수석부사장이 상반기 중 약 68억원의 퇴직금 등을 받고 회사를 떠난 점을 지적하며 구조조정을 “경영 실패 책임을 직원에 전가하는 행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박병무 공동대표는 지난달 28일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 임원진들도 상당히 많이 회사를 떠났고, 연말 조직개편 때도 일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구조조정에 따른 인건비 등 고정비 감소가 실적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면서도, 엔씨의 위기 타개는 결국 출시 예정작들의 흥행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훈 유진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게임사가 수익을 잘 내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 감축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게임의 흥행으로 이어져야 중장기적인 성장에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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