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꺼진다' 발언 후,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때 처음 등장한 응원봉
올해 윤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는 당당히 메인으로
다양한 장르 응원봉 물결 속 K팝 팬덤 수 압도적, 여성 참여 두드러져
god '촛불하나'부터 로제 & 브루노 마스 '아파트'까지 K팝 울려 퍼져
외신도 '댄스 파티' '즐거움 만끽' 등 집회의 '명랑함' 부각
올해 윤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는 당당히 메인으로
다양한 장르 응원봉 물결 속 K팝 팬덤 수 압도적, 여성 참여 두드러져
god '촛불하나'부터 로제 & 브루노 마스 '아파트'까지 K팝 울려 퍼져
외신도 '댄스 파티' '즐거움 만끽' 등 집회의 '명랑함' 부각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탄핵'이라고 쓰인 응원봉을 들고 있다. 박종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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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원하지 윤석열 퇴진을 오 함께면 할 수 있어 윤석열 사고만 치는데 모르겠어 언제 퇴진할지~"
"탄핵~ 해야지! 탄핵~ 해야지!"
찬 기운이 품을 파고드는 12월 겨울밤,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12·3 내란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은 익숙한 K팝 가사를 바꿔 불렀다. '세상을 뒤집자!'고 외치는 소녀시대 '힘내'에선 "사고만 치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제 퇴진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지친 직장인의 출근길에 함께한 세븐틴 유닛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의 후렴은 금세 '탄핵해야지'라는 가사로 바뀌었다.
지난 3일 밤 "북한 공산 세력" "종북 반국가 세력"을 운운하며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고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의 극렬한 반대에 힘입어 '6시간 천하'를 스스로 종결해야 했다. 정치 활동과 언론·출판 행위를 억압하는 포고령까지 내렸고, 대한민국은 단숨에 '요주의 국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다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여러 비리 의혹은 물론, 대통령으로서도 '실정'을 거듭해 이전부터 '윤석열 탄핵 집회'가 진행됐으나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는 규모부터 압도적이었다. 주최 측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따르면, 이날 윤 대통령 탄핵 집회 참석 인원은 100만 명에 이른다.
2016년 12월 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횃불을 든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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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비선실세' 최순실의 정체와 함께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집회'에서, 촛불만이 아니라 LED 촛불, 횃불을 포함해 응원봉 등 '꺼지지 않는' 시위 도구가 등장한 배경이 있다. 2016년 촛불 정국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국민의힘)가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라고 한 탓이다.
2016년에도, 지금도 무언가 '바로잡히길' 바라며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진지한' 자리에 과연 '응원봉을 가지고 가도 될까?' 하고 염려하는 팬들이 있었다. 기우였다. 이번 집회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응원봉'과, '응원봉을 든 이들'이었다. 원형, 사각형, 다각형, 장미, 바람개비, 검, 총, 캐릭터, 경광봉 등 다양한 모양과 색을 지닌 응원봉의 '알록달록함'이 국회 앞을 환히 밝혔다.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응원봉연대'를 꾸린 트위터리안은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려 했습니다"라며 "8년 전에도 지금도 저희의 생각은 같습니다. '덕후가 나라 걱정하면, 그건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글을 지난 6일 올렸다.
그러면서 "저희는 저희가 가진 '가장 밝고 소중한 빛'을 가지고 다시 한번 바깥으로 나가고자 합니다"라며 "우리는 언제 어느 때이건 '우리가 누군가를, 무엇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동이 그리고 우리 자체가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12월 7일 여의도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권했다.
트위터 @Let_me_dukj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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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로운 탄핵 정국이 들어서고 나서는 '전국 응원봉 연대'라는 트위터 계정도 등장했다. 2D, 3D, 버추얼을 비롯해 '모든 응원봉이 가능'하다고 알린 '전국 응원봉 연대'의 계정주는 "저는 다른 시민 깃발과 같이 암담한 시국에 조금 더 능동적으로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동료 시민 1"이라며 "실제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며 여러분을 대표하는 자격을 갖고 있지 않으니 모쪼록 이 계정으로 생기는 불상사가 없길 바랍니다"라고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각자 아끼는 대상을 향해 '사랑과 응원'의 의미로 흔들었던 응원봉은, 헌정 질서 교란 사태를 질타하고 책임자인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본래 어둠 속에서 빛나도록 설계된 응원봉은 형형색색으로 국회 앞을 빛냈다. 발광력이 좋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붙일 수 있는 응원봉은 '인기 아이템'이 돼 판매처 문의가 빗발쳤으며, 중고 거래 시장에선 '플미'(프리미엄, 웃돈)까지 붙는 실정이다.
응원봉 든 이들이 원래 누구를 응원하는지는 상관없었다. 2024년 12월 현재 이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잘못이고, 바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한 가장 빠르고 확실한 조처가 '탄핵'이라는 데 합의를 이룬 개개의 시민이 한목소리를 냈다. 스포츠나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가 넘실대는 와중에 독보적인 수를 자랑한 것은 'K팝 팬덤'이었다. 성별을 살피면 여성이 압도적이었고, 그중에서도 2030 여성이 다수였다.
흘러나오는 노래도 달라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헌법 제1조' 등의 민중가요도 있었으나 K팝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김수철 '젊은 그대', 무한궤도 '그대에게', 코요태 '순정', god '촛불하나', 거북이 '빙고', 2NE1 '내가 제일 잘 나가', 샤이니 '링딩동',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 지드래곤 '삐딱하게', 김연자 '아모르 파티', 엔시티 드림 '캔디', 에스파 '슈퍼노바',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부석순 '파이팅 해야지', 로제 & 브루노 마스 '아파트'와 윤수일 '아파트'가 앞다투어 나왔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내란죄 윤석열 탄핵!' '윤석열을 체포하라'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든 모습. 박종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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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가 나오면 해당 팬덤의 환호가 커졌다. 샤이니 '링딩동'이 나올 땐 샤이니월드가,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가 나올 땐 아미가, 엔시티 드림 '캔디'가 나올 땐 시즈니(엔시티즌)가 한층 흥겹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일부 노래에서는 떼창은 기본, 응원법과 화음까지 곁들여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여성혐오적인 가사가 들어간 싸이의 '새' 같은 '선곡 미스'도 있었지만, '댄스파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흥겨운 분위기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삐딱하게'가 나올 때는 마치 록 페스티벌에 온 듯 점프하는 사람이 속출했고, 이화여대 학내 투쟁 당시 저항의 의미로 불렸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나오자 떼창 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집회 현장을 취재한 전 KBS 기자 홍사훈 기자는 지난 7일 한 방송에서 "그 야광봉(응원봉), 그걸 한번 보셨어야 한다. 그걸 보고선 정말 울컥하더라"라며 "제가 봤던 기존 집회 현장이랑 너무 달랐다. 그게 너무 감동스러웠다"라고 말했다. 또 홍 기자는 '실망은 개나 줘 버려'라고 개사한 것을 언급하며 "그걸 보면서 '정말 끝나지 않았다'"라고 여겼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 딸내미뻘, 전부 다 그 세대다. 야광봉을 흔드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정말 희망을 느꼈다"라며 "절대 포기하지 말자, 절대 실망하지 말자. 저런 세대가 아직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벌써 포기하고 실망부터 할 수 있겠느냐"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응원봉을 든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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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이런 현상에 주목했다. BBC는 7일 집회를 다룬 기사 [South Korea's emotional protesters watch impeachment hopes fade]의 첫 문장에 응원봉을 언급했다. 영국 BBC는 "서울 국회 밖 스피커에서 박진감 넘치는 레이브 음악이 울려 퍼지자, 시위대는 환호하며 다양한 색의 응원봉을 흔들었다"라고 썼다. BBC는 "한국 시위 집회는 야외 음악 페스티벌을 닮은 경향이 있고, 이번 집회도 마찬가지였다"라며 "관객들은 오후 내내 즐거움을 만끽했다"라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시위대가 영하의 날씨에도 K팝에 맞춰 노래하고 응원봉을 흔들며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APF통신 역시 "K팝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위 참가자들은 LED 촛불과 화려한 야광봉을 흔들며 즐겁게 뛰어다녀, (시위는) 댄스파티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라고 바라봤다.
변화한 집회 분위기에 발맞추려는 노력도 감지된다. 지난 8일 집회에서는 아예 사회자가 아이유 '아이크', 샤이니 '샤팅스타', NCT '믐뭔봄' 등 여러 가수의 응원봉을 소개하는 코너를 선보였다. 중장년층은 K팝, 102030세대는 민중가요 플레이리스트를 예습하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9일 집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를 같이 배우는 시간이 마련됐고, 온라인상에서는 집회 현장에 나온 곡을 모아 '탄핵 플리'를 만드는 이들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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