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문학의 밤’ 행사에서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는 교민 신미성(왼쪽)씨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국어로 낭독하고 있다. 이날 ‘문학의 밤’은 한강을 비롯해 역대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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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5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멜라렌 호수를 끼고 있는 클라라 멜라르스트란드 산책로.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한강의 2021년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3부 ‘불꽃’의 일부를 한국어로 읽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명의 역대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을 읽는 ‘문학의 밤(Literature Night)’ 행사에서다.
오후 3시면 해가 지는 스톡홀름은 오후 5시면 이미 새까만 밤이다. 날씨 앱을 켜보니 기온은 영상 1도 안팎. 물가 특유의 습한 서늘함 때문에 체감 기온은 영하 2도까지 떨어졌다. 취재진을 비롯해 관광객, 일반 시민 등 70~80여 관객이 추위 속에서도 30분가량 진행된 낭독 행사에 귀를 기울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의 그라치아 델레다(1926년 수상),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2018년),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2022년)에 이어 올해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을 순서대로 각 연사가 5분가량 낭독했다. 작품이 쓰인 모국어로 먼저 읽고 그다음 스웨덴어 낭독이 이어졌다. 연사로 나선 이들은 코를 훌쩍이고, 때로는 소매로 코를 훔쳐가며 책을 읽었다.
8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문학의 밤' 행사에서 현지 교민 신미성 씨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들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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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의 한국어 낭독은 현지 교민 신미성(46)씨가 맡았다. 주스웨덴 한국문화원이 그를 추천했다.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 중인 신씨는 “노벨문학상 수상 전에도 한강 작가는 스웨덴에서 알려졌었다”며 “수상 이후에는 모두가 한강 작가를 너무나 궁금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도서관에 한강 작가의 책이 수백권쯤 있는데, 서가에 책이 놓일 때가 별로 없어요. 한강 책을 기다리는 대기자만 1000명이 넘어요.” 순간 귀를 의심해서 ‘1000명’이 맞는지 재차 숫자를 확인했다. “1000명 맞아요. ‘채식주의자’는 90~100권쯤 있는데, 지금 500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웨덴어 낭독은 스웨덴 배우 안나 시세(53)가 이어갔다. 낭독 이후 취재진과 만난 그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내 아버지는 서아프리카 출신이고, 내 선조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이해하려면 이런 작품을 읽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세대를 거듭해도 고통과 분노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8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문학의 밤' 행사를 기획한 엘리세 세르빈씨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맨 오른쪽 두 연사가 한강의 작품을 낭독했다. 왼쪽이 교민 신미성씨, 오른쪽이 배우 안나 시세.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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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를 기획·총괄한 건축가 엘리세 세르빈(29)씨는 “여성 수상자들을 조명하되 다양한 시기, 다양한 언어를 들려주기 위해 네 명의 역대 수상자를 골랐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그가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 건축학과와 협업해 만든 임시 목재 건축물 ‘돔 아데르톤(De Aderton·스웨덴어로 열여덟이라는 뜻)’ 옆에서 진행됐다. 1909년 수상자인 스웨덴 작가 셀마 라겔뢰프부터 2024년 한강까지,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18명의 초상을 스테인드글라스 액자 조명으로 만들어 목재 건축물의 창(窓)으로 넣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성별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상의 경우, 1901년부터 총 121명이 상을 받았다. 그중 여성은 18명.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90년 동안 여성 수상자는 6명에 그쳤지만, 이후 30여 년 동안 12명의 수상자가 나오면서 노벨상의 ‘남성 선호’ 현상은 줄어드는 추세다.
스웨덴 스톡홀름 거리에 설치된 설치물 '돔 아데르톤'. 작품에 한강 작가의 초상이 불을 밝히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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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는 ‘노벨 위크’ 행사는 반환점을 지났다. 한강은 6일 기자 간담회,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8일 노벨 콘서트 등 노벨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만으로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10일에는 스톡홀름의 명소인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해 스웨덴 국왕에게 ‘노벨 메달’과 증서(diploma)를 받는다. 이후 시청사로 옮겨 진행하는 만찬에서 한강은 짧은 ‘특별 감사 연설’을 할 예정이다.
[스톡홀름=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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