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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지 하루 만에 정치권 전체가 혼돈의 수렁에 빠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8일 오전 11시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으로 정국을 수습하겠다”며 “윤 대통령은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해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와 당이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며 “주 1회 이상 국무총리와의 회동도 정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주례회동 하듯, 자신이 한 총리와 국정을 챙기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한 대표 회견 4시간여 만인 오후 3시20분, 행정안전부는 “윤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전원 사의를 표한 대통령실 참모와 내각 구성원 중 윤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사람은 충암고 선후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이 전 장관 둘뿐이다.
“대통령이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한 대표는 “적극적 직무행사라 보기는 어렵다”고 방어했다. 하지만 친한계 곳곳에선 “윤 대통령의 확실한 2선 후퇴가 필요하다. 이런 식이면 결국 탄핵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행안부 장관이 국민안전 등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이다 보니 공백상태로 둘 수 없어 국정안정화 차원에서 사의를 수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 총리나 한 대표가 탄핵이나 하야 등 대통령의 궐위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헌법 제71조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궐위와 사고로 직무를 할 수 없을 때만 가능하며, 제86조 2항에는 국무총리는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는다고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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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안 14일 재표결… 우원식, 여야 대표회담 제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날 담화에서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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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통수권 역시 헌법(제74조)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또 정당 대표가 국정을 운영할 권한은 헌법과 법률 모두에 근거가 없다.
한 대표 등 친한계는 윤 대통령이 전날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한 말을 권한 위임의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엄연히 재직 중인데 그 권한을 총리와 당 대표가 행사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자 위헌”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총리실 관계자도 “대통령 재직 중 총리와 당 대표의 국정 운영은 전례도, 법적 근거도 없어 고심이 깊다”고 말했다.
한동훈 “당대표 국정 권한 행사못해” 해명
‘공동 대국민담화’라고 공지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문을 읽었다. 조기 퇴진을 강조한 한 대표와 달리 한 총리는 “국정 공백 최소화”에 방점을 뒀다. 총리실은 이날 오후 한 대표가 주장한 회동 정례화에 대해 “실무 당정과 고위 당정 협의가 활발히 이뤄짐을 의미한다”며 발을 뺐다.
여러 논란이 확산하자 한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총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취지는 어폐가 있다. 당 대표가 국정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오해”라며 “비상시국에 당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총리와 협의하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국정농단 상황에서 우원식 현 국회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고 총리에게 전권을 맡겨라’고 했다”고도 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 주장에 대해선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의 방안”이라며 “탄핵의 경우는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불확실성이 상당한 기간 진행돼 극심한 진영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이 같은 움직임을 ‘2차 내란 행위’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 탄핵과 즉각적인 체포·구속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을 9일 재발의해 이르면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또 이날 의원총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에 대한 탄핵안을 10일 보고해 12일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민주당은 거국내각을 포함해 여당이 제시하는 그 어떤 타협책도 수용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여당 대표와 총리가 해괴망측한 공식 발표로 다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며 “오는 12월 14일 우리 민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윤석열을 탄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 탄핵 추진은 계속해서 ‘목요일 (본회의 보고), 토요일 (표결)’ 일정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윤석열은 배후 조종으로 숨어 있으면서 내란 공모 세력을 내세워 내란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얼굴을 바꾼 2차 내란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우리 국민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지, 여당을 대통령으로 뽑은 일이 없다”며 “일반 국민 시각에서 보면 (한 대표) 니가 뭔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 대표가) 공산당 인민위원장쯤 되나”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의 사의를 재가했다는 소식에 민주당은 “한동훈 대표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윤 대통령이 여전히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한민수 대변인)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계엄 사태 과정에서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가 수습 과정에 적극 나서는 데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또 한 총리를 향해 “위법, 합법을 떠나 제정신인가 의심이 된다”며 “왜 그러셨나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욕심이 앞서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한 총리가 계엄 전 국무회의에서 계엄령 발동에 찬성했다면 수사 대상”이라며 “헌법상 행정부 통할권, 공무원 임명권, 법령 심의권, 외교권, 군 통수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건 위헌”이라고 했다.
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날 한 총리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위임 없이 여당 대표가 국정을 주도하는 것은 옳지 않고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공동담화 발표 등을 통해 위헌적 행위가 마치 정당한 일인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국민주권과 헌법을 무시하는 매우 오만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우 의장은 그러면서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중단시키고 현재의 불안정한 국가적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여야 회담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재명 “의장이 제안한 여야 회담 수용”
이재명 대표는 이날 우 의장이 제안한 여야 대표 회담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신속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한동훈 대표는 “내가 들은 게 없다”고 답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하루빨리 국민에게 방안을 밝히지 않으면 보수 진영은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는 “현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 속도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훨씬 빨라 당장 다음 주 대통령 지지율이 발표되면 여당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당장 탄핵 또는 하야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보수 진영은 ‘탄핵 트라우마’에 이어 ‘국민 계엄 트라우마’를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새롬·박태인·윤지원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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