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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6 (일)

삼성 추격에 초유의 '24시간 근무'…TSMC 성공 지켜본 대만인의 조언[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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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엔지니어들은 새벽 1시에도 생산 라인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 한 통에 회사로 달려가 수리하기 때문에 새벽 2시면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간다. 미국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한밤 중에 회사에 간다는 걸 꿈도 꿀 수 없고 다음 날 오전 9시는 되어야 수리가 가능하다.

머니투데이

한국에서 출판된 책을 들고 있는 린홍원 고문/사진=린홍원 고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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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삼성전자가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핀펫 공정이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고 발표하며 TSMC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당시 TSMC의 주요 공정 기술은 16나노였는데, 1년 후면 삼성에 14나노 주문을 빼앗길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10나노 공정 개발에 사활을 걸겠다며 선포한 사내 제도는 세계 반도체 R&D 사상 초유의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다. R&D 인력 400여명에게 대폭적인 처우 개선을 약속하고 24시간 3교대로 쉬지 않고 일하게 한 것이다.(지금은 이 제도가 없다고 함) 이런 TSMC의 성공 비결을 공개한 책이 바로 지난달 말 국내에서 출간된 <TSMC, 세계 1위의 비밀>이다.

책은 IT 전문 저널리스트로 대만 경제일보, 금주간(今週刊)에서 30년간 TSMC를 취재해온 린홍원 금주간 고문이 썼다. 2023년 대만에서 출간된 이후 올해 3월 일본에서 <TSMC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큰 화제를 모았으며 내년 영문판 출판도 앞두고 있다.

지난 3일 대만에 있는 린홍원 고문을 화상(줌)으로 인터뷰해 TSMC의 기업 문화, 삼성전자와 한국에게 주는 조언 등을 물었다.

-미국이 대중국 추가 반도체 제재를 발표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특히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7나노 이하 첨단반도체 개발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가.

▶관건은 설비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네덜란드 반도체장비업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구매할 수 없는데, 이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극자외선 노광장비 없이 7나노, 또는 5나노를 하려면 멀티패터닝(Multi-Patterning·반복 노광 공정)을 해야 하는데 반도체를 만들 수는 있지만, 원가가 아주 높아진다. 따라서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계속 적자를 내야 하며 또는 정부가 보조금을 줘야 한다.

중국이 반도체 장비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런 장비는 개발하기 힘들다. 물론 절대 못 만들어 낼 거라는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만들 수 있지만 그때는 ASML이 차세대, 차차세대 장비를 만들 것이고 중국이 격차를 좁히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선단공정이 그렇다는 말이며 성숙공정, 즉 10나노나 20나노에서는 중국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중국이 선단공정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성숙공정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가 돼서 지금의 전기차처럼 싼 가격에 반도체를 만들어 내면 세계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의 향후 전망이 주요 관심사다. 삼성전자에 어떤 조언을 줄 수 있나.

▶먼저 최근 4~5년 동안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한국에 미친 영향이 크다. 중국과 한국은 산업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에 한국이 중국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게 됐다. 반면 대만은 중국과 이미 분리되기 시작했는데, 대만 기업은 대부분 제품(최종재)이 없고 브랜드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굴기하기 시작한 LCD·스마트폰은 한국과 겹친다. 그리고 현재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이 한국, 특히 삼성전자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한국에 미친 영향이 크다).

둘째,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재료 수출 규제로 인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수율(양품률)이 영향을 받았으며 셋째, (삼성전자 위기론에는) 몇 년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많은 재판을 받고 심지어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경영상 중대 결정도 내릴 수 없었던 영향도 있다.

마지막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에서 삼성이 비교적 뒤처진 게 관건이다. TSMC는 엔비디아, SK하이닉스와 AI동맹을 형성했으며 삼성은 여기에서 배제돼 있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TSMC와 협력하면서 제품 개발 로드맵까지 구체적으로 짜여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삼성이 파운드리 부문을 분사해서 다른 사업부문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린홍원 고문은 <TSMC, 세계 1위의 비밀>과 이번 인터뷰 전반에 걸쳐서 '고객 신뢰'를 여러 번 강조하면서 삼성이 고객을 안심시키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파운드리를 분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린 고문은 수직적 통합보다는 수평적 분업과 전문화가 글로벌 추세가 자리잡았다며 엔비디아, TSMC처럼 가장 잘하는 한 분야에 집중하는 기업이 성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TSMC의 엔지니어 문화를 강조했다. 어떤 예가 있나.

▶TSMC는 엔지니어 문화가 강하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 장비 구매다. 현장 엔지니어가 상부에 특정 반도체 장비 구매를 직접 건의하며 이런 장비는 제품 생산에 도움이 되고 수율(양품률)도 높다.

또한 엔지니어는 반도체 장비를 사용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데이터로 관리하기 때문에 누구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TSMC 직원을 취재했을 때, 상부에서 반도체 장비를 사려고 할 때 엔지니어가 '노'(NO)라고 하면 감히 구매할 수 없으며 엔지니어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은 모두 의대에 입학하길 원한다. 대만은 어떤가.

▶대만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은 의대로 가서 의사가 되거나 전자정보대학(전기·전자·컴퓨터)으로 간다. 의대 점수가 아주 높지만, 전자정보대학 점수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기·전자산업이 의사보다 인기가 조금 더 크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면 전기·전자산업에서 열심히 일하면 보수가 아주 높기 때문이다. (작년 퇴임한) 류더인 TSMC 전 회장이 좋은 예다.

확실히 대만 전기·전자산업은 비교적 기회가 많다. 또 대만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뚜렷한 창업 풍조다. 대만은 대기업 위주인 한국과 달리 중소기업이 많다.

대만의 전자산업은 기본적으로 창업자들이 만들었으며 이는 아주 중요한 점이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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