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 오판, 일선 경찰까지 '내란 공범' 뭇매
"긴급 상황서 불법 따지긴 어려워" 의견도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 병력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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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에 출입하려는 의원들을 막은 경찰에 대해 사실상 '내란에 가담한 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조직 내부에서 지휘부를 향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6일 비상계엄 선포 관련 경찰청 대응 문서에 따르면, 조지호 경찰청장은 선포 직후인 3일 밤 10시 46분과 밤 11시 37분 박안수 계엄사령관과 통화 후 국회 출입을 막았다. 밤 11시 6분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신분이 확인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허용하라'고 지침을 바꿨는데, 계엄사령관 전화에 번복된 것이다. 조 청장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계엄군이 투입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변에 경찰 배치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 청장은 전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회 출입 통제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못 한다고 거부했다"면서도 "이후 포고령이 발령됐다고 해 내용을 확인한 뒤 서울청장에게 전면 통제를 지시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한국일보와 만난 여러 경찰관은 사흘 전 비상계엄을 기점으로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에서 단숨에 '내란 공범'으로 전락한 현실에 씁쓸함을 표했다. 기동대 근무 경험이 있는 50대 경찰관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따라 굴러가는 조직 특성상 갑작스럽게 출동 지시가 떨어진 심야 비상 상황에서 (현장 경찰관이) 독자적인 행동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모든 경찰에 내란 의도가 있었다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져 안타깝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했다. 한 간부급 경찰관도 "사안이 긴급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따져 물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경찰 내부망에서도 '지휘관은 경찰 조직을 정권의 보호막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국민은 경찰의 적이 아니며, 국민의 저항권을 보호해야 한다' 등 지휘부를 질책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현직 치안감인 배대희 충남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경찰 내부망인 '폴넷'에 "이상한 비상계엄에 경찰이 연루돼 '경찰이 국가비상상황을 획책했다' 의심을 들게 한 상황이 기분 나쁘다"며 "독재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국민의 경찰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수십 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고 작심 비판했다.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억울" 의견도
조지호 경찰청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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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내란죄 적용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 긴박한 상황에서 당장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따지기 힘들었고 크고 작은 충돌을 막기 위해선 경찰 배치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다. 한 40대 경찰관은 "지휘부가 지시를 받는 순간 위법성을 꿰뚫어 항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큰 충돌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국회 통제를 지시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일선서 경감도 "국회 경비대나 영등포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현장에 '일단' 투입돼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불이익(내란죄)이 있을까 조직이 뒤숭숭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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