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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 (금)

계엄사태로 장관 사과 무산…선감학원 옛터에선 “집단수용시설 조사 특별법 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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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일 선감학원 옛터인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캠퍼스 선감생활동 2층 강당에서 열린 ‘집단수용시설 피해실태 및 회복방안을 위한 학술토론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이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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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선감학원 퇴소 이후에도 40~60년을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던 사실을 비밀로 하며 사회적 고립 속에서 노인이 되었다. 또다시 붙잡혀서 재입소 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선감학원 수용 사실과 문맹을 감추며 생존해낸 것이다.”(이향림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상담사)



4일로 예정됐던 선감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과는 전날 벌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사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5일 발표하려 준비했던 “행안부 장관 사과에 대한 환영 성명”도 미뤄졌다. 이런 가운데 6일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가 연 학술토론회에서는 “선감학원을 비롯한 집단수용시설 내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피해회복을 위한 상설조사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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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수용시설 학술토론회가 열린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캠퍼스 선감생활동은 과거 선감학원 대강당이 있던 곳이다. 과거 선감학원이 운영되던 시절 동굴에 숨어있던 잡혀 온 형제 중 동생이 원생 4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르래로 공중에 올려졌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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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캠퍼스 선감생활동 2층 강당에서 열린 이날 ‘집단수용시설 피해실태 및 회복방안을 위한 학술토론회’에는 강신하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인류학과 교수, 김진희 전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조사팀장, 이미진 선감학원사건피해자지원센터 상담사 등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장완익 해마루 변호사, 김혜이 땅도프로덕션 독립영화감독 등은 토론에 나섰다.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기조연설을 했다.



행사가 열린 곳은 과거 선감학원 대강당으로 쓰였던 곳으로, 최근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일랜드 보이즈’에 나온 피해생존자는 이곳에서 400여명의 원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용 아동에 대한 공개처형이 벌어졌다고 증언한 바 있다. 동굴에 숨어있다 잡혀 온 형제에게 본때를 보여준다며 이들을 도르래에 걸어 공중에 올렸는데 형제 중 동생이 기절한 뒤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은 1946년 2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부랑아 일소 및 갱생’을 명분으로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8~19살의 아동·청소년들을 강제 연행한 뒤 경기도가 운영하는 외딴섬 선감도의 선감학원에 수용한 인권 침해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사회와 격리된 채 일상적인 굶주림·강제노역·폭언·폭행 등의 가혹 행위를 당했다. 경기도 자료에 따르면 원아 대장이 확보된 피해자 수는 최대 575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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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선감학원 옛터인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캠퍼스 선감생활동 2층 강당에서 열린 ‘집단수용시설 피해실태 및 회복방안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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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첫 순서로 기조연설을 한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일개 재판으로 이분들의 피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나. 특별법을 통해 이분들에 대한 피해조사를 세심하게 하고 회복방안과 배·보상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선감학원 뿐 아니라 형제복지원·선감학원·서산개척단과 서울동부여자기술원 등 다양한 집단수용시설 전반에 대한 피해실태 및 회복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희 진실화해위 전 선감학원 조사팀장은 “진실화해위에서 여러 집단수용시설에 대해 조사했지만, 접수되지 못한 사건이 접수 건수보다 많았다”며 “사건의 개별성과 피해규모 등을 고려하여 집단수용시설 조사를 위한 국가의 피해회복 조치와 함께 피해회복의 일환으로써 조사기구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특별법 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김 전 조사팀장은 이와 함께 조사방법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기존 조사위원회에서는 트라우마를 고려한 조사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고, 수사기관의 피의자 조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조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진술조사를 하는데서 너무 많은 피해사실을 담으려고 과도하고 자극적인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성폭력에 대한 것은 피해자가 직접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조사관이 선제적으로 묻지 말아야 한다”는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의 조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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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이 2023년 10월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유해발굴(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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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서 선감학원과 함께 주요하게 언급된 또 다른 수용시설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서울시립영보자애원이었다. 1985년 설립된 여성수용시설인 서울시립영보자애원은 수용인원이 한때 1100명에 이르렀으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피해자는 단 1명뿐이다. 이곳은 현재 200명 정도의 수용자들이 남아있는데, 대다수가 수용된 지 무려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영보자애원의 사례분석을 통해 수용시설 내 의료피해 현황에 대해 발표한 김관욱 덕성여대 인류학과 교수는 “이 시설은 전문적 돌봄이 필요한 환자 및 장애인, 고령의 입소자에 대해 보호 및 단순 처치 등의 대증요법에만 집중했던 시설이라 판단된다”고 말했다.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문제화의 과제 : 연령, 젠더, 장애의 교차’를 발표한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수용시설 관련 연구는 기존의 윤락행위등방지법 위반과 여자기술원 중심의 접근을 넘어 정신적 장애, 노령,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인권침해 매커니즘의 규명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조사와 연구는 각 시설의 책임을 넘어, 각 시설이 서로 연계되게 만든, 제한된 인력과 자원 속에서 입소자들에 대한 보호 의무를 이행토록 강제하거나 방임한 국가 책임에 대한 규명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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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선감학원 옛터인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캠퍼스 선감생활동 2층 강당에서 열린 ‘집단수용시설 피해실태 및 회복방안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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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나선 장완익 변호사는 “특별법을 제정해 상설기구를 만드는 것은 참으로 험난한 일이다. 진실화해위와 유사한 조사기구가 설립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앞선 위원회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태성 용혜인 의원실 지역특별보좌관은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전 의원이 발의했던 ‘거주시설 수용 피해생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위로보상금, 일시지급 의료지원금, 정착금 지급 및 상담 및 치료프로그램 등의 지원까지 법안에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에 참여한 이향림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상담사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선감학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회 영역에서 연결된 모든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피해생존들이 치유를 얻고 과거의 기억과 분리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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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선감학원 옛터인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캠퍼스 선감생활동 2층 강당에서 열린 ‘집단수용시설 피해실태 및 회복방안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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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토론회장에서 만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이주성(64)씨는 “현재 경기도가 경기도에 적을 둔 피해생존자들만을 대상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특별법을 통해 정부 차원의 치유 프로그램이 시작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9살이던 1970년 수원역에서 납치돼 1975년까지 선감학원에 수용됐다. 이씨는 “1972년 선감학원에서 탈출했다가 잡혀 왔는데 창고에 갇혔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끈으로 온 몸이 묶인 채 일주일간 물도 먹지 못했다. 나와보니 끈이 팔의 살을 파고들어가 있더라. 그다음부터는 무서워서 도망갈 생각도 못 했다”며 울먹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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