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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매경시평] 상권의 생존, 상권만으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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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상권이 어디일까? 과거에는 상점이 밀집한 구역을 의미했지만, 이제 상권의 개념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상권은 이제 생활권으로 확장되고 있다. 용도 규제가 느슨한 한국 도시에서는 상업 시설이 동네 중심을 넘어 주거지역 곳곳에 자리 잡으며 사실상 생활권 전체가 상권이 되었다.

소비자도 이러한 변화에 적응했다. SNS와 위치 기반 서비스 덕분에 소비자들은 동네 전체를 하나의 상권으로 여기고 '여행하듯' 소비하는 방식을 즐긴다.

상권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 상권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문화를 창출하고 소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 망원동, 연남동 같은 곳에서는 동네 자체가 문화지구가 되어 다양한 창작과 소비가 일어난다.

이처럼 상권 활성화는 주거, 일자리, 문화가 어우러진 생활권 육성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상권 중심 활성화 사업이 한계에 부딪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생활권 확장을 반영하는 상권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공식 상권의 범위를 생활권으로 확장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일정 면적 내 점포와 업종 밀집도를 기준으로 상권을 구획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실질적 생활권인 읍면동 단위로 상권을 재정의하고, 소상공인 지원 또한 생활권 단위로 구성해야 한다. 상인 커뮤니티 역시 기존 상인회 중심에서 벗어나 동네 축제, 로컬 메이커스페이스 운영, 문화 기획 등 생활권을 아우르는 주민 중심의 활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신도시 상권은 생활문화 중심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신도시는 공급 과잉과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인해 심각한 공실 문제와 경쟁력 약화를 겪고 있다. 획일적인 건물 설계와 불편한 보행 환경은 매력적인 상권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앞으로 신도시 상권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문화 생산의 거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상권 영향 평가와 총량 규제를 통해 공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특히 잠재력이 있는 구역에서는 보행 친화적 환경 조성과 용도 규제 완화를 통해 크리에이터와 콘텐츠 생산자가 활동할 수 있는 장소로 발전시켜야 한다. 신도시도 주거지에서 벗어나 생활권 중심의 문화 창출 모델로 거듭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소멸 위기 지역의 거점 도심을 생활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소멸과 상권 쇠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군청이나 읍면 소재지의 거점 도심은 과거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주요 관광지로 직행하면서 그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은 전통 상점과 청년 상점이 공존하고, 역사적인 건축물과 골목길이라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생활권과 문화지구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거점 도심 육성을 위해 지역 특화 자원을 발굴하고, 로컬 콘텐츠 개발과 창작 공간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상권을 크리에이터 중심의 생활권이자 문화지구로 재정의하면 정책 방향도 자연히 달라진다. 시설 현대화, 축제와 공연, 청년몰 등 제한된 시장 구역을 활성화하는 것에서 생활권 전체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

주거, 일자리, 여가가 어우러진 생활권은 삶의 질을 높이고 창의성을 자극하는 상권 모델이다. 상권이 문화를 창출하는 생활권의 중심이 될 때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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